주목할 ‘유럽의 주4일제 실험’

2022.03.02 03:00 입력 2022.03.02 03:02 수정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이며 높은 노동시간으로 인한 역기능(산재, 노동자 건강권 침해)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대선을 앞두고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각각 주4일, 주4.5일 근무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주4일제에 대해 시기상조다,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말하며 정책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기술 발전으로 인한 노동시간 감소는 불가피하다며 이 논의를 반기는 입장도 있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최근 유럽에서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비대면 근무 및 노동시간 유연화의 가능성을 확인한 기업 및 정부가 주4일제를 적극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전,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노동인구의 1%인 2500여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시간 단축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결과, 노동자 대부분이 생산성을 유지했으며, 노동자의 건강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스웨덴에서도 2014년부터 몇몇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이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하는 실험을 했으며, 질병휴가 감소, 노동자의 행복감 상승과 같은 효용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최근에는 스페인 정부와 벨기에 정부가 주4일제 실험과 노동시간 유연화에 나섰으며, 스코틀랜드 정부도 내년부터 6개월간 실험을 진행한다. 이처럼 유럽의 나라들이 중앙정부 차원에서 주4일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것은 산업구조 전환으로 인한 일하는 방식 변화에 대응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주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이들은 노동자의 건강 개선, 산업재해 감소, 여가시간 확대로 인한 일과 생활의 균형,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확대 등을 근거로 제시해왔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주4일제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4일제로 인해 노동자들의 자동차 출퇴근을 줄이고, 공장 및 사업체의 에너지 사용량을 절감할 수 있기에 탄소 배출량 감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반대하는 측에서는 주4일제가 야기할 임금소득 감소, 생산성 감소, 사업장별 양극화 심화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노동시간이 제한될 시, 특수고용종사자 및 플랫폼노동자, 추가노동수당에 크게 의지하는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2018년 주52시간 제도를 실시했지만 아직 소규모 사업장까지 정착하지 못했다는 점을 이유로 주4일제 도입은 무리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주4일제 도입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이슈이기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산업·기업별로 노동시간 감소, 유연화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 도입에 앞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정책 도입 시 발생할 생산성 변화, 임금소득 차이,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 역시 동반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선 후보들의 주4일제 공약이 빈 공약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정책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유럽 국가의 사례에 관심을 기울이되, 제도적 맥락을 고려하여 한국형 주4일제를 시범 운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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