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지배구조

2022.03.04 03:00 입력 2022.03.04 03:04 수정

[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지배구조

‘성장’이라는 개념은 투자자들을 매혹시킨다. 미국 나스닥의 기술주에 열광하는 서학개미들과 몇 해 전에 나타났던 중국과 베트남 투자 붐은 이 땅에서 충족되지 않는 성장에 대한 욕구를 해외투자를 통해 발현했던 사례들이다.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와 산업에 내 돈을 투자해 증식을 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성장과 투자의 성과가 늘 비례했던 것은 아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 경제가 요즘보다 훨씬 활력 넘쳤던 시기는 1980~1990년대다. GDP 성장률은 쉽게 10%를 웃돌았고, 생활인으로서의 체감경기도 훨씬 좋았던 때다. 그렇지만 당시 한국 증시의 성과는 부진했다. 1986~1988년의 3저 호황 국면에서만 반짝 강세장을 경험했을 뿐 이를 제외한 시기에는 코스피가 500~1000포인트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성장이 둔화되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졌던 2000년대 들어 코스피는 2000포인트를 넘어 3000포인트대로 도약했다.

3저 호황 이후 1989~2002년 한국의 명목 GDP성장률은 연평균 12.6%였지만, 코스피의 연평균 수익률은 -2.6%였다. 반면 2003~2021년에는 연평균 명목 GDP성장률은 5.3%에 그쳤지만, 코스피는 연평균 8.5% 상승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관찰된다. 최근 10여년간 중국의 명목 GDP성장률은 연평균 8%대로 글로벌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상하이종합지수는 2007년에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 6100포인트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3000포인트대에 머물러 있다.

주식투자엔 지배구조가 매우 중요

성장이 주가와 관련 없다는 결론은 현상에 대한 오독이고, 성장이 주가 상승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주가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수렴하는데, 고성장을 하는 국가에 속한 기업은 이익을 늘릴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투자자들에게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 주주들과 잘 공유될 수 있을지 여부이다. 기업의 부와 주주들의 부를 연결하는 일련의 과정이 거버넌스(지배구조)이다.

주식투자에는 지배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주식은 출발점부터 지배구조와 관련된 이슈가 내재돼 있었다. 주식과 채권은 일종의 권리 또는 소유권에 대한 증서임과 동시에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산들이다. 주식과 채권을 제외한 다른 자산들에 대한 투자를 모두 대체투자라고 부르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주식과 채권은 대표적인 금융자산으로 기능해왔다.

주식과 채권 중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자산은 채권이다. BC 3000년 바빌로니아 때부터 채권의 맹아적 형태가 기록돼 있으니, 채권의 역사는 5000년에 달한다. 반면 주식회사의 기원은 1602년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이니, 주식은 400년 조금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채권이 주식보다 역사가 긴 것은 구조가 훨씬 단순하기 때문이다. 자금 대여자와 차입자, 만기와 이자율 정도가 채권 투자에 필요한 모든 것이다.

주식이 채권보다 복잡한 것은 지배구조 때문이다. 동인도회사의 예를 들어보겠다. 동인도회사의 소유권은 회사에 출자한 주주들에게 있지만, 주주들이 동인도회사의 구체적인 영업활동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지로 항해해 향신료 등을 싣고 오는 것은 주주들이 아니라 회사에 고용된 선장과 선원들이다. 이들이 아시아에서 싣고 오는 각종 물품을 빼돌리거나 감추는 것은 주주들의 부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주식 투자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업을 실제로 운영하는 임직원들이 기업의 소유주인 주주들의 부를 잘 지켜줘야 한다. 상장된 회사들은 주요 경영사항을 외부에 알려야 할 공시 의무가 있는데, 공시는 경영진에 대한 주주들의 감시에 다름 아니다. 회사의 중요한 일을 감추지 말고, 기업의 주인인 주주나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예비 주주들에게 투명하게 알리라는 게 공시제도의 목적인 것이다

1980~1990년대 고성장 국면에서 한국 주식시장의 성과가 부진했던 이유도 지배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주식이라는 무형의 재산권이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경제적 신뢰 인프라가 취약했다. 무엇보다도 정치권력이 시장을 지배했다. 1985년 10대 재벌이었던 국제그룹이 권력자의 눈 밖에 나자 곧바로 무너졌다. 또한 만연했던 분식 회계와 정보 비대칭성에 기댄 소위 작전은 주주들의 부를 파괴했고, 감시받지 않는 소수 지배주주들의 전횡도 주주가치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관투자가 주주행동주의에 주목

중국 증시의 장기 성과가 부진한 이유도 지배구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진핑 정부가 말하고 있는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그들 나름의 결정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런 정책 기조가 주주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빅테크에서 차량공유업체까지 중국의 정책 리스크는 광범위하게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증시의 경우 분식회계나 내부자가 개입된 불공정 매매 행위 등은 많이 근절됐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치권력으로부터 기업과 시장이 가지는 자율성도 크게 높아졌다고 본다. 남아있는 과제는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소수 지배주주와 압도적 지분이지만 분산돼 있는 다수 소액주주의 이해관계 불일치이다. 배당과 기업분할 등에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나갈 수 있는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가 기업의 장기 가치 제고의 방향과 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주주들의 단기성과 지향이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주주 이외 다른 이해 당사자들의 이익도 고려하는 ESG 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주주자본주의 과잉을 걱정하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주식투자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섰다. 주주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주주자본주의 결핍으로부터 발생하는 코스트가 더 큰 것 아닌가 싶다. 소액주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기관투자가의 적절한 주주행동주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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