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코스닥시장을 어찌할꼬

코스닥은 한국의 증권시장이다. 주로 신생 벤처기업들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1996년 7월에 만들어졌으니, 1956년에 거래가 시작된 코스피시장의 동생뻘이다. 동생이지만 덩치는 형보다 커졌다. 4월6일 기준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ETF와 스팩 등 제외)은 모두 1496개로, 코스피시장의 815개보다 훨씬 많다. 그렇지만 영세하다. 코스닥 상장 기업들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쳐도 416조원으로, 코스피시장 삼성전자 한 종목의 시가총액 460조원에 못 미친다. 시장의 장기 성과도 부진하다. 코스닥 지수는 1996년 7월 1000포인트로 출발했는데, 25년이 지난 현재 940포인트대에 머물러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코스피는 3.3배 상승했다. 평판이 좋은 것도 아니다. 코스닥에 상장돼 성공한 기업들인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은 코스피시장으로 둥지를 옮겼다. 우량 기업들의 이탈은 코스닥 지수 장기 성과 부진의 중요한 이유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한국 증시의 천덕꾸러기 혹은 마이너리그 취급을 받아왔지만, 가끔은 기대주로 부상하기도 했다. 대체로 신정부 출범 직후 그랬다. 대기업 중심의 성장 모델을 보완할 대안적 역할로 벤처기업이 부각됐곤 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권 때는 벤처육성,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때는 창조경제와 혁신성장이라는 이름의 성장 전략이 나올 때 코스닥시장에 온기가 돌았다. 일시적 모르핀 효과에 그쳤지만 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코스닥은 미국 벤처기업들의 요람인 나스닥을 본떠 만들어졌다. 1990년대 중반 웹브라우저 업체 넷스케이프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등이 나스닥시장에 상장되면서 기술주 열풍이 불었고,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술낙관주의가 세계로 전파됐다. 코스닥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고, 일본의 나스닥 저팬, 영국의 대안투자시장, 대만의 그레타이 등이 비슷한 시기에 설립됐다.

개미들 절대적 소외로 이익 비대칭

나스닥식 성장 모델은 매우 역동적이지만, 큰 비용도 수반된다. 나스닥식 성장 모델에서 ‘버블은 필요악’이기 때문이다. 닷컴 버블 때를 생각해 보자. 당시 고평가된 기술주들을 사들였던 투자자들은 ‘손편지를 대신해 e메일을 보내고, 쇼핑과 음악감상도 인터넷에서 하는 세상’을 꿈꿨을 것이다. 이 판단은 옳았다. 요즘 우리가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에 상장돼 거래되던 기업들이 만개한 인터넷 세상의 주역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역이 되기는커녕 상당수 기업들은 파산해서 퇴출됐다. 인터넷 생태계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야후와 엠파스, 라이코스는 쇠하거나 사라졌고, 닷컴 버블 국면에서 상장돼 있지도 않았던 구글이 절대 강자가 됐다.

인간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 흥하고 망할 기업을 정확히 구별해 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를 미리 알 수는 없다. 특히 역사 속에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산업에 속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더 그렇다. 결국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산업 전반으로 돈이 흘러들어가는데, 이 과정은 냉철한 이성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이고 들뜬 버블의 형성 과정에 다름 아니다. 투자자들은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술낙관론에 기댄 버블이 형성되지 않으면 신산업에 자금이 들어가기 어렵다.

잘 알지 못하는 신산업에 계속 자금이 투자되는 이유는 대박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구글 주가는 상장 이후 70배가 상승했고, 넷플릭스는 645배나 올랐다. 한국의 네이버도 310배 상승했다. 처음부터 꼭 찝어 네이버가 아니었고, 많은 벤처기업들에 자금이 투입된 가운데 네이버가 살아남았다고 봐야 한다. 닷컴 버블이라는 열광이 없었더라면 네이버는 애초에 자금을 수혈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자본시장 중심의 나스닥 모델은 버블을 필요악으로 한다.

나스닥식 모델이 버블의 반복과 소수의 승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증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 간의 이익 비대칭성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싶다. 개인투자자들의 절대적 소외가 그것이다. 코스피시장에서는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이 크고, 코스닥시장은 개인투자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개인투자자들은 IPO 등을 통해 벤처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했지만, 코스닥시장이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부는 오히려 코스닥시장에서 파괴돼 왔다.

상장기업 만성적인 증가 고민 필요

코스닥의 장기 성과 부진과 관련해서는 상장 기업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코스닥 상장 기업 수는 1500개에 육박하고 있는데, 일본의 자스닥은 685개, 영국의 대안투자시장 상장 종목 수는 714개에 불과하다. 상장종목이 너무 많다 보니, 코스닥시장에서는 ‘묻지마 투자’가 횡행할 개연성이 높다. 제도권 증권사에서 분석하는 코스닥 종목 수는 100개도 되지 않으니, 개인투자자 입장에서는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없다. 극심한 정보 비대칭성은 불공정거래 행위를 발생시킬 개연성을 높였고, 이는 시장의 평판도 저하로 귀결돼 왔다.

최근 수년간 벤처업계로 투입된 자금이 5조원 남짓이라고 한다. 한 기업이 30억원 정도씩 투자받았다고 가정하면 1500개가 넘는다.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종목도 있지만, 모험 자본의 전략적인 자금 회수는 주식시장 상장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향후에도 많은 기업들이 코스닥 상장을 시도할 것이다. 상장되는 기업이 많은 것은 한국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증표일 수도 있지만, 만성적인 공급 증가에 따른 수급불균형은 투자자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사족.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고위 공직자들의 청문 절차가 진행될 텐데, 코스닥 기업에 대한 투자가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 청문회에서는 코스닥 기업의 주주로 있으면 떳떳하지 못한 행동인 양 비판을 받았다. 창조경제와 혁신성장의 주역으로 대접받았던 기업들과 공직자의 주식계좌에 들어 있는 기업들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어쨌든 상장의 문턱을 통과한 기업에 대한 투자에서 흠을 잡는 것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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