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개발자 더 보고 싶다

2022.05.03 03:00 입력 2022.05.03 03:03 수정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달 PC 운영체제인 윈도 11에서 화상회의 시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기로 했다. 또 일정한 시간 동안 e메일, 메시지 등 알림이 울리지 않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방해 금지’ 모드도 추가했다. 둘 다 업무 중 유용하게 쓰일 만한 기능들이다. 이 기능들은 모두 장애를 가진 MS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실시간 자막은 화상회의에서 소외감을 느꼈던 청각장애인 매니저가 개발했고, 방해 금지 모드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직원이 ‘알림이 너무 많아 일에 집중할 수 없다’고 호소하면서 만들게 됐다.

조미덥 산업부 차장

조미덥 산업부 차장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에선 이렇게 장애인이 본사의 제품과 서비스 담당자로 일하면서 접근성 개선에 나서는 일이 흔하다. 예를 들어 애플 아이폰의 기능 중 이미지를 말로 설명해주는 ‘보이스오버’ 담당 팀엔 시각장애인 직원이 배치돼 있다. 구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수백명이 함께 일하는 장애인 접근성 팀을 두고 있다.

한국 기업의 장애인 고용 문화는 좀 다르다. 한국에서 민간기업은 전체 직원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내는 기업이 많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민간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89%로 전년보다 0.02%포인트 하락했다.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은 2.37%로 더욱 낮다.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더 외면하고 ‘돈으로 때우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의 지난해 9월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5년(2016~2020년) 동안 748억원으로 가장 많은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냈다. 그룹으로도 삼성(11개사)이 1311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대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더라도 안마, 작업복 세탁, 바리스타, 콜센터 등 부차적인 업무에 몰아서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일자리도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차원에선 충분히 의미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기업도 미국의 IT 기업들처럼 회사의 주요 업무에 장애인을 배치해 장애인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활용했으면 한다. 장애인이 전자회사 제품 기획자, 인터넷 플랫폼의 서비스 개발 조직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기술은 비장애인들이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기술과 서로 연결돼 있다. 알렉산더 벨이 처음 발명한 전화기의 기술은 그가 청각장애인인 아내와 대화하기 위해 개발하던 보청기에서 출발했다. MS의 청각장애인 직원이 자신의 불편을 해결하려 만든 화상회의 실시간 자막 기능은 비장애인에게도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장애인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기업 외부의 독려도 필요하다. 장애인을 주요 보직에 고용한 기업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점수를 높게 주고, 장애인이 업무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돼야 한다.

카카오는 지난달 20일 국내 IT 기업 중 최초로 ‘디지털 접근성 책임자(DAO)’ 직책을 신설하고, 시각장애인인 자회사 링키지앱의 김혜일 접근성팀장을 첫 DAO로 임명했다. 척박한 국내 환경에서 매우 의미 있는 시도다. 다른 기업이 벤치마킹하도록 좋은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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