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과 소수의견

2022.04.19 03:00 입력 2022.04.19 03:02 수정
장은교 소통·젠더데스크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박지현)이 지난 1월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아마도 이것이었을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용만 당하는 것 아닐까?” 요즘 민주당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제발 박지현을 이용이라도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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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수사권을 몰아주지 못해 안달 난 경찰이 디지털성범죄 수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을 때 박지현은 동료 한 명과 함께 n번방의 실체를 추적해 세상에 알렸다. 디지털성범죄 수사는 박지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박지현은 견고했던 벽에 구멍을 내고 길을 만든 존재다. 많은 여성들이 “박지현에게 빚졌다”며 정치를 시작한 그를 응원한 것은 이런 이유다. 특히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하고 “여성가족부 폐지”가 주요 정책인 정권을 눈앞에 둔 여성들에게 박지현은 그나마 거의 유일하게 기대를 걸 만한 정치인이다.

그런 박지현이 지난 12일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두고 의견을 냈다. 그는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기도 힘들지만 통과된다고 해도 지방선거에 지고 실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정권교체를 코앞에 두고 추진하는 바람에 이재명 상임고문과 문재인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오늘 여러분께 다수의견이 아닌 소수의견을 내겠다. 누군가는 말해야 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박지현의 발언 후 몇시간 뒤 의원총회에서 검수완박 추진을 당론으로 정했다.

‘소수의견’과 ‘용기’라는 말을 생각해본다. 우리 사회의 많은 중요한 일들이 다수의견으로 결정된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국회에서도. 다수결은 다수라는 이유로 힘을 갖는다. 그러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구성원의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사회 평균보다 나이가 많으며 고학력이고 수입이 많은 편이고 여전히 남성이 많다.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다수의견은 대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소수의견은 과연 소수만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소수자들’이라고 통칭하는 것도 조심해서 썼으면 한다.

국회 172석이라는 힘을 갖고도 차별금지법 제정 대신 검찰 수사권 폐지를 택한 민주당의 미래 따위는 크게 관심이 없다. 출범도 하기 전부터 피로감을 주는 정권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든 말든, 그래서 다음 다다음 선거에서도 패배하든 말든 관심 없다. 다만 의견을 말할 때 ‘용기’를 내야 하고 ‘소수의견’임을 전제해야 하는 곳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소수의견에서 의견이 아니라 소수라는 것에 집중하는 사회는 폭력적이다.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검수완박 입법 추진안이 만장일치로 추인됐다”고 발표하자, 권지웅 비대위원은 “만장일치 당론 채택이라고 하는데 제가 본 현장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말”이라며 “이견이 존재했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 결정됐다”고 말했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민주당이 박지현의 좋은 이미지만 이용하고 안 좋게 헤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는, 박지현이 아니라 민주당이 해야 한다. 박지현은 민주당을 떠나서도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민주당은 글쎄…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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