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람이 멎지 않도록

2022.05.07 03:00 입력 2022.05.07 03:01 수정

다음달 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캠프에서 일하는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몇 년 만에 지역을 다녀보니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도 아닌, 새로운 정치세력이 부쩍 늘어난 게 느껴져요.” 굳이 따지면 민주당과 가깝겠지만 거대 양당이 공유하는 성장과 개발 정책, 미디어 정치와 거리를 두고 공동체를 꾸리려는 이들이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역 일자리를 만들며 복지와 돌봄을 실현하는 생활정치를 추구하는, 이른바 ‘깨시민’들이랄까.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얼마 전 서울동북권NPO지원센터가 주최한 ‘탄소중립기본법 시민참여형 조례 톺아보기’ 공론장에 갔다. 지난해 제정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광역·기초자치단체는 탄소중립조례를 만들도록 돼있다.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실천 경로도 달라진다. 어디는 공장과 발전소, 어디는 건물과 교통에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서울은 아무래도 건물과 교통 위주인데 이날 참여한 성북, 강북, 도봉, 노원, 중랑의 시민활동가들은 환경부, 서울시, 다른 자치단체, 에너지전환 전문기관에서 만든 표준안을 참고하면서 각자 전략을 짜느라 분주했다.

국가감축목표(NDC)도 중요하지만 지역감축목표(RLDC)가 더 확실하다는 걸 알게 됐다. 윤석열 정부는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탄소배출을 40% 줄이기로 한 NDC가 무리라며 후퇴할 조짐이다. 그러나 RLDC가 이를 좇아갈 이유는 없다. 과거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자 200여 도시들이 기후동맹을 만들어 변함없는 기후정책을 실행했다. 시민활동가들의 고민은 공무원을 설득하는 것이다. 조례를 잘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교통, 건축, 폐기물, 지역경제 등을 담당하는 부서가 이 업무를 통합시킬지가 관건이다. 시민들이 앞서가는 시대에 민관협치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주최한 NPO지원센터는 다음달 문을 닫는다. 서울시가 위탁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전임 박원순 시장의 정책에 대한 뒤집기가 시작됐고, 민관협치를 추진하던 중간지원조직들이 차례로 문을 닫고 있다. 단순한 정책전환이 아니라 민주당의 지지기반을 없애는 일이라 여길 것이다. 어쨌든 ‘반오세훈’으로 몰린 중간지원조직들은 백방으로 저항했음에도 차례로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사실 시민단체들이 중간지원조직이란 이름으로 정부사업을 해온 것의 한계는 분명하다. 정치적 편가르기에 동원되고 정권 교체에 따라 연속성이 사라진다. 그러나 한국 시민단체들의 경우 이들을 후원하는 재단도 없고 개인기부자도 적다. 그나마 진보적 자치단체장들에게 의존해 오늘까지 활동을 이어왔다. 이제 시민단체의 대부였던 박원순 서울시장 체제가 명실상부하게 끝났으니 독자노선을 걸어야 할 시점이다.

이런 와중에 ‘5% 캠프’가 최근 출범했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바로 세우기’에 반발했던 ‘오! 시민행동’의 후속모임이다. 그런데 단순히 오 시장에게 반대하는 게 아니라 지난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보여주었던 공약의 내용 없음에 반발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의제를 내놓고 5%(25만명) 시민들의 지지를 끌어내는 게 목표이다. 과거 후보자들이 내놓은 공약을 평가하고 낙선운동을 벌이던 것보다 한 계단 올라섰다.

또 하나 희망적 소식이 있다. 고려대가 6일 ‘탄소중립계획 및 협력적 이행체계’ 세미나를 통해 국내 대학 최초로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국가 R&D의 중추적 역할을 하면서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하는 대학의 선도적인 탄소중립 이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소개한 공론장에서 성북구 활동가들은 고려대의 참여 없이는 탄소중립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화답을 받았다. 2019년 기준 서울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관은 서울대이고 연세대는 14위, 고려대 15위, 한양대는 16위이다. 대학이 탄소중립에 앞장서는 것은 명분이나 실제에서 정말 중요하다.

정치권에서는 윤리감각이 국민의 눈높이에 못 미치는 국무위원 후보들을 놓고 옛 정권과 새 정권의 기 싸움이 한창이다. 상대를 비난했던 말을 돌려받으며 기시감을 연출한다. 경제계는 코로나19 규제가 완화되자 ‘보복소비’라는 이름으로 물질적 욕망을 자극하며 성장을 부추기고 있다. 소비를 못하면 보복이 필요할 만큼 분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현장에서는 새로운 각성의 바람이 일고 있다. 그 바람이 멎지 않도록 우리의 권리를 심사숙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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