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이유를 알까

2022.06.04 03:00

한 달 전 칼럼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지역 일자리를 만들며 복지와 돌봄을 실현하는 생활정치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이들은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아닌 제3의 정치세력이고 이들의 뜻을 대변하는 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주권자로서 우리의 권리를 숙고하자고 제안했다. 2년이 넘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난 직후에 치러진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미래가치가 반영된 신선한 바람이 일어나기를 기대했지만 역시나 헛된 꿈이었다. 선거는 거의 이념적 차이가 없는 거대 양당의 리그로 끝나고 말았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4년 전과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압도적 파랑이 국민의힘의 압도적 빨강으로 바뀌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보면 광역단체장은 3 대 14에서 12 대 5, 기초단체장은 75 대 151에서 163 대 63, 광역의원은 172 대 652에서 550 대 322, 기초의원은 1287 대 1639에서 1604 대 1384로 뒤집었다. 당적은 없으나 교육감 역시 보수와 진보의 비율이 3 대 14에서 8 대 9로 바뀌었다. 민주당에 실망한 주권자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판이 달라진 것은 부동층이 많기 때문이다.

부동층은 사전적 의미로 선거 때마다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을 바꾸거나 선거일이 될 때까지 지지하는 후보와 정당을 정하지 않는 불투명한 주권자이다. 확고한 지지 정당이나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거나 비교적 무관심한(투표를 안 할 만큼 무관심하지는 않지만) 계층이다. 이런 부동층을 잡기 위해 후보자들이 경쟁을 벌이는데 이들의 성향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부동층이 넓어질수록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해 보수와 진보의 공약은 비슷해진다. 2018년 서울대 폴랩의 여론조사는 정당의 이념 간 거리가 점점 좁아진다는 사실을 실증한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초박빙의 경쟁을 벌인 김은혜,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의 핵심 공약은 거의 일치했다. 부동산 과세를 완화하고 재건축, 재개발, 리모델링을 쉽게 하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를 확충하는 것이다. 일찌감치 승패가 예측된 서울시장 선거도 비슷하다. 그동안 ‘지체’된 서울의 모습에 피눈물을 흘렸다는 오세훈 후보의 개발 공약은 말할 것도 없지만, 송영길 후보 역시 김포공항을 이전하면서 해남과 제주 사이에 100㎞의 해저터널을 뚫어 서울부터 제주까지 KTX를 운행한다는 국토 대개조 계획을 내놓았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전 민주당 대표의 공약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

대선이나 총선도 그렇지만 지방선거는 심각하게 개발을 부추긴다. 투표장에 나오는 주권자 모두가 자기 지역에 아파트, 고층빌딩, 공장, 고가도로, 지하철이 들어서길 원한다는 전제하에 움직인다.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지역이 되길 원하고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민들의 삶에 어려움은 없는지, 어떻게 하면 좀 더 건강하고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선거에서 쓰는 언어 자체가 예산 항목의 용어와 일치한다. 정치권은 모른 척하지만 여기에 염증을 느끼는 부동층이 늘어나고 있다.

더욱 괴리가 느껴지는 것은 선거 결과에 대한 해석이다. 윤석열 정부에 힘을 몰아주기 위해서, 민주당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서 등등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내놓는 분석은 지방자치의 본질과 전혀 맞지 않다. 지방자치는 중앙권력의 액세서리가 아니라 지역의 삶에서 비롯된 문제를 지역정치로 해결하는 제도이다. 민주당의 어떤 의원이 성 비위를 저지르고 586세대 정치인들이 물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사는 지역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비슷한 개발공약 속에서 누가 중앙정부의 예산을 많이 따올지 경쟁하는 구도에서는 중앙당의 가십거리가 지역 선거를 좌우한다.

선거 결과가 나오자 패자인 민주당 지도부는 ‘국민의 심판’ 앞에 고개 숙여 사과하고 사퇴를 약속했다. 그런 겸손한 자세는 환영하지만 무엇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국민의 뜻을 살피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례적인 봉합 이외에 다른 방안은 없는지 궁금하다. ‘표심’에 대해 계량적으로, 선거공학적으로만 분석할 게 아니라 투표를 하고 결과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주권자들이 가졌던 불만과 바람을 살펴볼 생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정의당, 녹색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등 소수 정당은 이번에도 설 자리가 없었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다원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민주당이 진정 사과할 뜻이 있다면 소수 정당과 함께 차근차근 실현 가능한 미래가치를 세워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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