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고픈 청소년들에게

요즘 중·고등학교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을 많이 한다. 불과 20여년 전,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작가라는 사람을 보는 건 대단히 희귀한 일이었다. 작가뿐 아니라 그 누구든 학교에 와서 교사 대신 교탁 앞에 서는 일이 별로 없었던 듯하다. 나는 한 번도 작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채로 글을 써서 밥을 먹고사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진로 적성이라든가, 창의적 체험 활동 수업이라든가, 도서관 행사라든가 하는 이유로 거의 모든 학교가 한 학기에 한 번 이상은 작가를 초청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학생들을 만나면, 적게는 30여명, 많게는 100여명 모인 그들에게 종종 묻는다.

“혹시 작가가 되고 싶은 학생이 있나요?”

아무도 손을 들지 않거나, 한두 명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거나 한다. 하긴, 별로 매력 있는 직업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다. 누군가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 그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래서 질문을 바꾸어보기로 한다.

“언젠가 자기 이름으로 책을 한 번 내보고 싶은 학생이 있나요?”

그러면 몇 명이 더 손을 든다. 그래, N잡과 사이드잡의 시대에 꼭 직업으로 글을 쓸 필요는 없겠다. 그들은 나에게 “책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고 묻는다. 사실 여기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 “꾸준히, 열심히, 즐겁게, 쓰면 됩니다” 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천리안 PC통신으로 게시판에 접속했고, 거기에서 글을 읽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고등학생이 없다는 걸 알았다. ‘내가 한 번 써볼까’하는 마음이 된 나는 그날 매점에서 있었던 일을 각색해서 올렸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학교 매점에 줄을 섰다. 고3 선배가 와서 비키라고 해서 그에게 내가 먼저 줄을 섰다고 말했다. 그는 나의 명찰을 보더니 방과 후 너의 반으로 갈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동아리 고3 선배가 다가왔다. 그 선배가 내가 아는 동생인데 좀 봐주지, 하고 말하니, 그는 나에게 조심하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선배는 나에게 햄버거를 하나 사서 던져주었고 나는 울면서 그것을 먹었다.” 별것 아닌 이야기였으나 많은 추천과 댓글을 받았다. 자신의 고등학생 시절이 기억나니 계속 써달라거나, 요즘도 그 햄버거를 파느냐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날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게시판에 썼고, 다음날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거기에 달린 댓글을 읽었다. 그 일을 고1 봄부터 고2 여름까지 1년 넘게 꾸준히 했다.

어느 날, 나는 아침에 다음과 같은 댓글과 만난다. “너는 내가 아는 천재 고등학생 작가야.” 그날 등굣길은 다른 날과 달랐다. 수십 명의 학생들과 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가방을 메고, 언제나의 그 길을 걷고 있는데, 나에게서만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천재 고등학생 작가야, 하는 마음으로 고양된 것이다.

여러 작가를 만나 보아도 어느 순간 한 편의 글로 성공한 사람은 없다. 그들은 중학생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써왔다거나 고등학생 때부터 습작을 했다거나 하는 말을 한다. 결국 자신이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매일 조금이라도 꾸준히 해나간다면 언젠가 반드시 빛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 일이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것이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즐거워서 할 수 있다면 지치지 않고 조금씩 완성에 가까워지게 된다. 작가뿐 아니라 어떤 꿈이든 그러할 것이다. 꿈은 거창하거나 타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소소히, 꾸준히, 즐겁게 해나갈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고1 시절 시작해 꾸준히 해온 나의 글쓰기는 서른이 넘어 직업이 되었다. 여전히 계속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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