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 뽑은 ‘천재 단장’은 왜 실패했나

2022.08.11 03:00 입력 2022.08.11 03:03 수정

그러니까 이건 야구 얘기다.

2021시즌을 앞두고 김하성이 4년 2800만달러에 계약했을 때, 샌디에이고의 우승 한이 풀릴 것처럼 보였다. 내야 주전이 이미 꽉 찼음에도 김하성에게 주전급 연봉을 주고 계약했다. 에이스급 선발 투수들도 끌어모았다. 다르빗슈 유(연봉 2200만달러), 블레이크 스넬(연봉 1050만달러)도 데려왔다. 2019시즌 7000만달러 수준이던 팀 총연봉이 단숨에 1억7900만달러로 세 배 가까이로 치솟았다. 돈을 펑펑 썼고, 우승을 노렸다.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이용균 뉴콘텐츠팀장

AJ 프렐러 단장의 과감한 베팅이었다. 프렐러 단장은 김하성 계약을 두고 “딱 맞는 자리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어디에 쓸지가 아니라 다양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능력’을 모으면, 팀이 강해진다는 뜻이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 대실패였다. LA 다저스와 리그 우승을 다툴 것이라 평가받던 샌디에이고는 가을야구에도 오르지 못했다.

샌디에이고는 8월10일까지 67승49패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후 롯데월드 자이로드롭처럼 추락했다. 부상 선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위기를 반전시킬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 패배가 쌓이면서 더그아웃 분위기도 함께 무너졌다. 코치와 선수가 드잡이를 벌이고, 주축 선수인 매니 마차도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눈을 부라리며 고성을 주고받았다. 첫 54경기까지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위를 달리던 샌디에이고는 가을야구 경쟁에서 탈락했다.

미국 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샌디에이고의 실패 이유 중 하나로 ‘유능함의 저주’를 꼽았다. 프렐러 단장은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신동’으로 평가받는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코넬 대학을 우등 졸업했고 필라델피아 구단 인턴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했다. 36세의 나이에 샌디에이고 단장이 됐다. 선수 스카우팅과 육성, 가치 평가에서 일찌감치 탁월함을 드러냈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고, ‘포토 메모리’ 수준의 천재적 기억력을 자랑한다. 워낙 박식해서 야구는 물론 어떤 주제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물로 명성을 얻었다. 말하기를 좋아해 의사 소통 능력도 인정받았다. 의사 결정 전에는 항상 주변의 의견을 먼저 들었다.

천재 단장의 탁월한 운영은 샌디에이고를 성공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문제는 조금씩 나타났다. 베테랑 버드 블랙 감독과의 계약이 끝나자 프렐러 단장은 애리조나 코치였던 앤디 그린 감독을 데려왔다. 데이터에 익숙한 젊은 초보 감독이었다. 성적이 나지 않았고, 프렐러 단장은 2020년 제이슨 팅글러 감독과 계약했다. 역시 메이저리그 경험이 없는 초보 감독이었다. 프렐러 단장의 야구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었다. 좋게 말하면 호흡이 잘 맞는 감독이고, 나쁘게 말하면 자신의 말을 잘 듣는 감독이었다.

프렐러 단장의 명석함이 강조되고 권한이 강화되면서 주변에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문제가 벌어지면 모두 단장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더그아웃에서 코치와 선수가, 주축 선수끼리 싸울 때 위기의 징후는 명확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다. 아이비리그 출신의 명석한 단장은 계획을 세울 수 있었지만,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만들어내는 경험이 부족했다.

2022시즌을 앞두고 과감한 베팅에 대한 부담만 남았다. 여전히 장기계약 고액 연봉 선수들이 많다. 팀 총연봉은 2억달러가 넘는다. 부상은 또 이어졌다. 타티스 주니어는 오토바이를 타다 손목을 다쳐 뛰기 어렵게 됐다. 2021시즌 악몽 재현이 예상됐다.

그런데 올시즌 샌디에이고는 다저스에 이어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2위로 잘나가는 중이다. 가을야구가 가시권이다. 10년 넘게 오클랜드를 이끌던 베테랑 명감독 밥 멜빈(61)이 지휘봉을 잡았다. ‘올드 스쿨’로 통하지만, 경기 운영 감각이 탁월하다. 코로나19에 걸려 잠시 빠졌을 때도 ‘줌’으로 더그아웃 미팅을 소집해 팀 분위기를 다잡았다.

단장의 권한과 감독의 역할이 적절히 균형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렐러 단장은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강타자 후안 소토와 조시 벨, 특급 마무리 조시 헤이더를 데려오는 등 제 역할을 다했다. 샌디에이고가 달라졌다. ‘능력’이라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초속 11.2㎞는 ‘쓴소리 가능’과 ‘다양한 의견 감수’에 있다. 쓰고 보니 꼭 야구 얘기만은 아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