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주적, 국민의 주적

2023.01.25 03:00 입력 2023.01.25 03:03 수정

[정희진의 낯선사이] 대통령의 주적, 국민의 주적

올 명절에도 정치인들은 전통시장을 찾았다. 시장마다 정세(政勢)가 달라서, 누가 어디를 가는가에 따라 ‘완전(?) 환영, 반만 환영, 계란 세례’까지 반응이 다양할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서울 마포구 망원 시장 방문은 지지자는 좋아하고 상인에게는 영업 방해였다. 그럭저럭 평균점이지만 그렇다면 안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여성 민방위 훈련”을 발의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이 여성 모임에 갔다면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은 민방위 훈련을 안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남성의 민방위 훈련도 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민생 무지에서 나온 발상이다. 대한민국 여성들이 얼마나 바쁜지 정말 모르는 듯하다. 기혼 직장 여성, 부모님 간병하는 여성, 아르바이트하면서 취업 준비하는 여성…여성은 시간이 없다. 김 의원은 여성의 “전시 무방비 상태”를 걱정하는데, 그런 걱정도 고맙지만 더 급한 것은 평상시 안전 보장이다. 김 의원처럼 이번 정권의 돌발적인 젠더 정책들의 이유가 표를 의식하는 사건이길 바란다. 무지라면 정말, 절망이다.

김건희 여사는 시간이 많은 듯하다. 정치인도 아닌 사람이 재래시장을 방문, 어묵을 먹는 행위는 맥락이 없다. 대통령 배우자는 배우자일 뿐, 임기 중에 정치적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어묵은 길고 국물이 흐르기 때문에 먹는 자세가 불편하다. 팔을 직각으로 세워야 국물이 옷이나 바닥에 떨어지지 않는다. 입은 최대한 벌려야 한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어묵을 먹으며 손까지 흔들고 있다. 가능하지 않은 포즈다. ‘어묵쇼’의 필수인 어린아이 안는 사진도 등장했다. 이런 사진은 대개 비슷하다. 아이는 울고, 안은 사람은 웃고, 아이 엄마로 추정되는 여성은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이다. 어묵쇼가 아니라 패션쇼 느낌이 강했다.

전통시장 - 어묵 - 민생의 연결은 계속 문제시되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6월18일, 대선 출마 선언 직전까지만 해도 “시장에서 오뎅 먹는 정치쇼 안 하겠다”고 했다. 물론 이후에는 어묵을 먹었다. 왜 순대, 라면, 튀김, 삼각김밥은 아니고 어묵이 민생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묵쇼”는 더 이상 안 봤으면 한다. 언론이 정신을 차려서 보도를 하지 말든가. 평소 그들이 먹는 음식도 아닐 것이다. 서민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면, 정치와 민생의 대립을 상정한 쇼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쇼도 중요한 정치다. 업데이트를 요구한다 .

고달프지 않은 삶이 없으니, 조금만 생각하면 적은 비용으로 개선할 수 있는 민생은 지천이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출발, 강남역까지 운행하는 146번 시내버스는 청소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서울시는 이들을 위해 출발시간을 15분 앞당겨 ‘주었지만’, 그래도 빠듯해서 여전히 종점에서 직장까지 뛰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동시 출발하는 세 대를 더 늘리거나, 운전기사에게 임금을 더 주고 더 빨리 운행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까. 이런 정책에 큰 비용 안 든다. 청소는 굉장한 육체노동이다. 청소노동자의 로테이션 근무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겨우’ 이런 일로 한덕수 국무총리는 자기 사진을 마구 방출했다. 대통령 배우자를 필두로 이 정권의 인사들은 모두 피사체 욕망이 대단한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각자 바쁜 것 같다. 대개는 두 사람의 민폐 경쟁인데, 이번에는 김건희 여사가 조금 낫다. 국내에서 어묵 시식은 그리 큰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은 대형 사고다. 이란 측은 여전히 불쾌감을 표시했고, 이후로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미국 사람들은 참 창피하겠다’고 생각했다가 대통령과 국민을 동일시하는 나의 국가주의에 스스로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의 역량 부족 때문에 국민이 심각한 피해를 본다면 얘기가 다르다. 내 일 같을 수 있다.

적은 누가 정하는가

이번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대통령의 발언은 이미 많은 우려와 비판을 받았지만 부언을 피할 수 없다. 첫째, 주적(主敵·main enemy)의 본래 범위는 국가 단위가 아니다. 영주나 군주, 즉 근대국가 이전의 개념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화가 무엇인가. “적은 (우리 조직) 내부에 있다”가 아닐까. 이는 전시나 평시나 마찬가지다. 조직 내부는 어디에나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미국의 성찰을 담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Platoon)>(1987)의 대사 “적은 우리 자신이었다(The enemy was in us)”는 항상 옳다. 피아의 구분은 유동적이다. 나쁜 통치자는 구분되지 않는 전선을 억지로 만들어내 공포정치를 하는 이들이다.

나는 예전에 여러 분야의 남성들이 실제로 주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연구한 적이 있다. 사병부터 장교는 물론 일반인, 밀리터리 마니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사회에서 주적 논쟁은 북한 대 미국의 관점에서 구성되고, 이는 진영 논리로 이어진다.

나는 “남한의 자주국방을 누가 방해하나요? 주적이 미국인가요, 북한인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일병은 “병장이요”, 하사는 “강남 애들”, 소령은 “진급 갖고 장난치는 상사” 그밖에 “마누라” “변심한 애인” “(해군과 공군의 입장에서)육군”, 국방 연구자들은 “그게 특정할 수 없고 미국의 관리 체제에서 우리가 정하는 것도 아니죠”라고 말했다. 이처럼 군 관련 인사들도 주적 개념을 특정하지 않았다. 이는 정치인의 이슈, 국내용 이데올로기다.

외교 문제는 담대하지 않았으면

전통적인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선공(先攻)하려면 무력, 경제력, 심리, 국제 여론 등 모든 분야에서 3배 이상 국력이 앞서야 한다고 본다. 준비되지 않은 침략 행위는 지금 러시아처럼 자멸이다. 현재 북한은 남한 인구의 2분의 1(2600만명), 경제력은 시민사회에서 정부, 미국 연구기관까지 모두 다르게 평가하지만 대략 17배에서 33배 차이다. 두 배만 해도 엄청난 격차다. 한마디로, 북한의 사정은 이유야 어떻든 세계 경제 10위권인 남한의 상대가 아니다. ‘백두 혈통’ 일가만이 자기들 살 궁리로 허세를 부릴 뿐이다 .

이제 북한은 남한의 적이 아니라 ‘부담’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대북 로드맵이라는 “담대한 구상”은 마치 동네의 덩치 큰 아저씨가 어린아이를 패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담대? 나는 이 말이 이번 정권의 가장 이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게다가 왜 남의 나라 주적까지 지정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3자가 한국의 주적이 누구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어떻겠는가. 나는 대통령의 발언으로 국제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위기감을 느꼈다. 윤 대통령은 1960년생인데, 어렸을 적에 “호메이니옹이 미국을 물리치고” “이란 콘트라 사건” 등에 대해 들은 바가 없는가. 미국과 이란은 오랜 갈등 관계에 있고 국제사회에서 남한은 미국의 추종자로 인식된다. 더구나 최근 이란은 자국 여성들에 대한 히잡 착용 강제 때문에 국제 여론에 예민한 상태다 .

통념과 달리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시대에도 주적이라는 말이 없었다. 국방백서에 주적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북한의 ‘도발’과 보수 진영의 요구로) 1995년 김영삼 정부 때이고, 노무현 정부 때 삭제되었다. 사실 국방백서에 주적을 명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국가 기밀 누설이나 다름없다. 주적을 정해놓은 나라는 없다. 만일 그렇다면 외교부는 왜 있으며, ‘국가 전략’이니 ‘한반도 정세 연구소’ 같은 허다한 말들이 왜 필요하겠는가.

개인의 인생에서도 주적은 매번 바뀌고, 주적이 있는 삶은 어마어마하게 피곤하다. 평생을 구조적으로 정해진 혹은 자신이 설정한 주적에게 끌려다니는 일상을 바라는 이는 없을 것이다.

전자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후자는 내가 바꿀 수 있다. 국가든 개인이든 주적을 선언해서 좋을 일 없다. 오히려 포커페이스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나는 이 시기 한국인의 주적이 있다면 “대통령”이라고 말하겠다. 이유는 대통령께서 몰명(沒明)지기 때문이다. ‘몰명지다’는 제주어로 “멍청하다” “정신 나갔다” “바보 같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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