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정책 3D의 순서와 외부효과

2023.01.31 03:00 입력 2023.01.31 03:04 수정

북한의 핵개발사는 국제사회의 비판과 오랜 제재에 따른 비용을 무릅쓰고 비핵화에 역행해왔다. 반면 우리의 북한 비핵화 정책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심지어 실패를 거듭해왔다. 모든 정책은 비용을 부담한다. 북한 비핵화 정책도 예외일 수는 없다. 북한은 이미 많은 비용을 부담했기 때문에 그들의 비핵화는 과거 비용에 대한 논란이 중심이다. 그래서 그들은 천문학적 비용에 대한 보상 심리로 똘똘 뭉쳐 있고 획기적 상황 변화가 없는 한 달려온 경로를 이탈하기 어렵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반면 우리에게 북한 비핵화는 미래 비용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다. 그러다보니 미래 비용의 규모나 산정 방식에 대한 이견은 상당하다. 여기에 미국이나 일본 등 국제 변수를 넣으면 더 복잡해진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보다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비용 산정에서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다르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단어를 통해 한국에도 비용 부담의 의무가 있다는 점을 주지하기 위함이다.

대충 윤석열 정부가 산정하는 미래 비용을 따져보면 북한의 도발을 군사적으로 억지(Deterrence)하는 데 드는 비용과 압도적 군사력 강화나 국제 제재 레짐을 통해 북한의 핵무력화를 좌절시키고 단념(Dissuasion)시키는 비용이 1차적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혹은 동시에 진행되는 협상(Dialogue)에서 북한의 과거 비용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하는 논의가 2차적이다. 소위 현 정부의 3D론이다.

3D에 대해서 억지 그리고 단념 이후에 대화를 한다는 것이라는 순서론적 해석도 있지만, 대체로 외교부는 3D의 집행 과정은 유연할 것이고 따라서 그 순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누가 생각해도 억지와 단념을 선행시킨다는 발상은 군비경쟁론이다. 3D를 순서론으로 보는 견해는 군비경쟁을 통해 북한의 무모한 도발을 완전히 제압하고 그로부터 비핵화 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을 만들어 북한이 이를 수용하게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후 대화를 통해 보상하겠다는 것이니, 군비경쟁을 통한 제압의 비용은 상당할 것이지만 대신 북한에 주어야 할 보상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반면 대화를 진행하면서 억지와 단념을 강제하는 과정은 상대적으로 보상의 규모가 크고 대신 억지와 단념을 위한 군비경쟁의 비용은 상대적으로 작아질 것이다. 단순화하면 북한에 더 주고 군비경쟁을 자제할 것인지, 군비경쟁은 부수 효과도 있으니 거기에 집중하고 북한에 ‘퍼주지’ 말 것인지 선택의 문제가 된다. 북한이 대화를 거부하는 현 상황에서 두 시각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둘 사이에 정책의 지향점과 관련한 본질적인 철학의 차이가 있다면 문제는 내연하게 마련이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군비경쟁을 강조하는 순서론은 대북 억지를 위한 군사력 증대의 외부효과에 관심이 있어 보인다. 부정적 외부효과의 비용과 긍정적 외부효과의 편익 간 비교 타산이 제기되는 이유다. 억지와 단념 후에 대화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에 다름 아니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순서론은 긍정적 외부효과에만 집중하는 관계로 동요하는 기색이 없다. 문재인 정부 시기는 북한과의 협상 국면에도 불구하고 전작권 전환이라는 사명감(?)하에서 국방비 증대를 추진해왔다. K방산론이라는 긍정적 외부효과도 있었지만, 정작 남북관계는 극도의 긴장 상태로 진입하여 부정적 외부효과를 경험했다. 안보딜레마라는 부정적 외부효과가 전작권 전환과 남북화해라는 본질을 삼킨 셈이다.

최근 나토 사무총장이 한국을 방문해서 한·나토 글로벌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적 연대가 “한국과 나토가 어떻게 상호 연결돼 있는지를 강조해 보여준다”며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고 한다. 연일 북한의 러시아 탄약 지원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11월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용 탄약을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나토 사무총장의 상호 연결론이 수상한 이유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면 글로벌 역할론과 중추국가론을 공론화하면 될 일이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영광과 책임 그리고 비용은 당연히 정부의 몫이다. 비판을 우회하고자 레토릭을 남발하다 보면 정책의 진정성이 의심받는다. 북한과 러시아의 연대를 우크라이나 지원의 이유로 들먹이다 보면 냉전식 진영론의 역풍을 맞게 된다. 낡은 냉전적 인식틀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담대한 구상’도 흠집을 피하기 어렵다. 순서론자들이 부정적 외부효과에 신경써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자칫 순서론자들 때문에 3D 대북정책이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다는 ‘진정성 회의론’에 직면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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