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과 불평등 없는 세상 향한, 기억과 행동

2023.02.20 03:00 입력 2023.02.20 03:05 수정

지난 1월 성남에서 모녀의 주검이 발견됐다. 옷 장사를 하던 딸과 함께 살던 어머니의 삶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로 장사가 순탄치 않을 때부터였다고 이웃들은 추정한다. 마스크를 벗는 것으로 코로나19가 종료된 것 같은 지금도 감염병이 초래한 청구서는 누군가의 삶에 새로운 무게를 더하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이들의 죽음을 두고 정부는 찾아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강화를 다시 언급하고 있다. 성남 모녀뿐만 아니라 신촌 모녀, 수원 세 모녀 등 가난한 이들의 죽음마다 ‘왜 발굴하지 못했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정부는 ‘더 열심히 발굴하겠다’ 답했다. 개인정보를 모아 빈곤층을 발굴하겠다는 계획은 9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제정된 ‘사회보장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에 뿌리를 두고 있다. 23종의 정보를 수합하는 것으로 시작한 사각지대 발굴 온라인 정보망은 현재 39종, 향후 44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감한 정보를 한군데 모아두는 것은 언제나 유출의 위험을 동반하지만 ‘사각지대 발굴’이라는 미명은 이에 대한 비판을 어렵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 대책들은 ‘발굴’되더라도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해 실제 지원받을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나 단순한 체납정보의 합이 누구에게 어떤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분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감춘다. 이는 실제 필요한 제도변화에 대한 관심과 요구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발굴의 효과도 의심스럽다. 2021년 사각지대로 발굴된 고위험군 대상자는 133만9000명인데 반해 이들 중 공적서비스로 연결된 이들은 16만5000명,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빈곤층 사회보장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연결된 대상자는 2만8000명으로 대상자 중 단 4%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반빈곤, 복지운동 단체들은 ‘발굴하더라도 지원할 수 없는 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해왔지만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주자만 바꿔 같은 코스를 뛰는 릴레이 경기처럼 ‘왜 발굴하지 못했나’ ‘더 열심히 발굴하겠다’는 우문과 우답을 맴맴 돌고 있다.

한국 사회 빈곤은 왜 가난한 이들의 죽음으로 표상되는가. 가난한 이들이 겪는 삶의 위기를 사회의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탓이다. 가난한 이들의 삶에 밀려오는 무수한 어려움을 사회의 주제로 다루지 않다가 죽음 이후에야 돌아보기를 반복하지 말자. 발굴이 아니라 빈곤과 불평등을 주조하는 현실을 주목하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다음주면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진 지 9주기를 맞는다. 송파 세 모녀와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리며 사회단체들은 오는 24일 추모제를 연다. 추모제지만 떠난 이들과 같은 현실을 사는 이들이 모여 말하는 자리기도 하다. 우리가 듣고 응답해야 하는 목소리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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