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소원

2023.02.23 03:00 입력 2023.02.23 03:02 수정

고객님 축하합니다!

‘세 가지 소원’ 이벤트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셨습니다. 석 달 전에 본사의 특판 상품에 가입한 적 있으시죠? 연체 없이 보험료를 3회 납부하면, 막대한 상금이 걸린 판촉 행사에 자동으로 응모하게 되는 상품이었어요.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본사는 갑작스러운 불행과 마주했을 때 꼭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기업입니다. 단순히 도움만을 제공한다면 ‘마술램프’라는 브랜드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보험과 복권의 장점만 결합한 우리 상품의 남다른 점은 불행을 기적과도 같은 행운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죠. ‘지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모든 직원은 고객의 아주 사소한 불행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각오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램프의 요정 지니입니다. 원래는 ‘진’이라는 족속이지요. 통화가 길어져도 괜찮으세요?

코란에 의하면,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진은 인간보다 훨씬 먼저 신이 창조한 피조물입니다. 불로 만들어져 정해진 형체가 없어요.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죠. 지혜롭고, 못하는 일도 없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허약한 인간들에게 복종할 수 없다고 반항하다가 대마법사 솔로몬에 의해 램프 속에 봉인되었다고 해요. 수천년 동안 갇혀 있으면서 진은 맹세합니다. 자신을 꺼내주는 사람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또 다른 수천년이 흐르도록 아무도 봉인을 해제하지 않자, 진은 분노하면서 다시 맹세하죠. 꺼내주는 사람이 누구든 이토록 늦게 봉인을 해제한 것에 대해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진은 선량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악하지도 않아요. 유능한데 주인을 가리지 않을 뿐입니다. 오래 갇혀 있으면 원망을 품습니다. 잘 부리면 매우 유용하죠. 눈치채셨나요? 돈의 속성과 비슷해요. 진이 할 수 없는 일이 두 가지라고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그리고 사랑하게 만드는 일. 여전히 돈으로도 쉽지 않은 일들이죠.

고객님의 소원은 무엇이죠? 설마 인류의 평화와 평등, 그런 건가요? 부와 명예, 사랑, 건강? 물론이죠.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에는 소원을 이루려면 마법이나 초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돈으로 뭐든지 가능합니다. 소원을 세 가지까지 빌지 않아도 돼요. 그래서 모든 이들의 소원은 오직 하나, 부자가 되는 거죠. ‘세 가지 소원’의 주인공에게 현금을 쏟아붓는 이유입니다. 본사의 수익구조요? 기밀 사항이라 세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원리만 알려드려요.

미국의 유명 대학에서 행한 실험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1달러 차이로 돈을 줘서 다섯 계급을 만듭니다. 따로 기부할 돈 2달러를 줘요. 기부는 바로 위나 아래 계급 사람에게만 가능하죠. 고객님은 누구에게 기부하시겠습니까? 대부분 아래 계급 사람에게 줍니다. 유독 한 계급만 위 계급 사람에게 기부하는 비율이 높아요. 맨 아래보다 한 단계 위에 속하는 이들이죠. 아래 계급 사람에게 2달러를 주면 자신이 꼴찌 계급이 되니까요. 실제로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이들이 대부분 최저임금보다 한 단계 위의 임금을 받는 계층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1) 살짝 힌트를 드리자면, 불평등이 커질수록 본사의 수익은 늘어납니다.

단기 고금리 대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대부분 미래보다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자신의 통제력을 너무 믿는다고도 해요. 비합리적 조건인 대출을 받는 이유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하는데요.2) 물론 판단력이 사라지는 절박한 상황을 이용한다는 것도 그들이 모르지는 않겠지요. 어쨌든 본사의 영업 비법은 광고입니다. 필요 없는 것을 꼭 필요하게 만드는 유혹의 구조죠. 고객님이 보란 듯이 막대한 상금을 가져가는 효과도 클 겁니다. 가난뿐 아니라 부러움도 판단력을 잃게 하죠.

그럼 설명을 끝내며 묻겠습니다. 고객님은 진정 기쁜 마음으로 상금을 수령하시겠습니까?

1), 2) <99%를 위한 경제학>, 김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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