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독백

2023.01.26 03:00 입력 2023.01.26 03:01 수정

왕이 새 옷을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헛소문이다. 신하들의 정직성을 믿었을 거라는 추측도 사실이 아니다. 평민이 할 만한 상상일 뿐. 내가 어리석은 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옷을 입고 백성들 앞에 나선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부희령 소설가·번역가

왕에게는 새 옷에 대한 욕망이 없다. 화려한 옷 따위는 얼마든지 있고, 쉽게 새로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몸치장은 사랑과 관심을 원하는 이들이 하는 행동이다. 왕은 사람의 층과 급으로 쌓아 올린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다. 아니 그보다 더 위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과 관심에 목마를 새가 없다. 왕의 일 대부분은 백성에게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일에는 오히려 염증을 느낀다. 왕의 욕망과 평민의 욕망은 다르다. 차원과 규모가 다른 것이다.

왕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나 갑작스러운 운명에 떠밀려 꼭대기로 올라온 이들은 위치가 제공하는 욕망에 쉽사리 짓눌린다. 외할머니가 주도한 모의로 열네 살에 로마의 황제가 된 엘라가발루스가 하나의 사례이다. 소년은 무엇이든 가능한 권력을 놀이에 쏟아부었다. 만찬에 손님을 초대한 뒤, 유리나 대리석 혹은 상아로 만든 음식을 대접했다. 거미가 들어 있는 고깃국물이나 사자 똥이 들어 있는 디저트 같은 것이 식탁에 오르기도 했다. 황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손님들의 고역에 소년은 즐거워했다. 권력에는 그에 적합한 욕망이 따로 있다. 제멋대로의 기괴한 놀이에 몰두하던 소년 황제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살해되어 티베르 강에 버려진다.

정직한 신하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왕에게 직언을 일삼는 자는 바보이거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골칫덩이다. 정직은 상호 이해와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관계에서 필요하다. 왕과 신하 사이에는 명령과 복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만 하면 된다. 왕은 누구도 이해하고자 하지 않고 누구와 소통할 필요도 없다. 왕이 바라는 것은 정직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움과 존경심을 자주 혼동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왕이 되는 것은 한때 보편적 소망이었다.’ 소수가 누리는 호화로운 삶을 위해 제 삶이 고달파지자 사람들은 더 약한 희생자를 찾았다. 자식을 지배하는 아버지, 아내를 노예처럼 부리는 남편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불평등은 오랫동안 용인되고 지속되었다. 왕이 존경받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만 희구하는 권력을 그가 구현하기 때문이다.1)

왕은 정직한 신하보다는 거짓말쟁이를 좋아한다. 이득을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이들과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이들은 권력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사기꾼들이 신비한 옷감을 들고 왔을 때, 나는 그들의 계략을 눈치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을 사람은 이 세상에서 왕밖에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없는 것을 있다고 믿게 하는 힘은 오직 왕의 권력뿐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꼭대기에 서 있는 자는 늘 벌거벗겨진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운명을 받아들이면 이용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군중 속을 걸어갈 작정을 했을 때 내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백성들은 자기 눈보다는 왕의 권력을 믿을 것이다. 자신이 어리석지 않음을 증명하려 애쓸 것이다. 두려움과 선망의 눈은 벌거벗은 왕이 걸친 아름다운 옷을 볼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2)니까. 나는 행진이 끝난 뒤 감탄하는 백성들에게 왕이 입는 신비한 옷을 판매할 계획이었다. 돈은 권력의 토대이다. 100%의 이윤을 끝없이 뽑아낼 화수분 같은 상품이 필요했다.

내 계획에는 치명적 오점이 있었다. 즐겁게 진실을 외치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가능성을 예상치 못한 것이다.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키워진 나는 코흘리개 꼬마의 용맹함에 대해 전혀 몰랐다.

1)‘인간의 내밀한 역사’, 시어도어 젤딘
2) 히브리서 1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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