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사는 밤에 잎을 닫는다

2023.03.23 03:00 입력 2023.03.23 03:05 수정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미모사는 밤에 잎을 닫는다

정류장 보도블록 틈 ‘낮은 풀’에 내리쬐는 빛을 가리지 않으려 발걸음을 옮겨본다. 봄은 빛이다. 사철 푸른 회양목은 일찍부터 초록빛 꽃을 틔우고 은은한 향을 풍긴다. 빽빽한 잎맥을 갖추진 못했지만 회양목은 속씨식물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뿌리에서 몸통으로 물을 올리고 광합성 산물인 설탕을 저장소로 보내는 관다발과 복잡한 잎맥을 갖춘 속씨식물은 몸집을 키워 꽃을 피운 다음 곤충을 부른다. 꽃 주변 꿀을 탐하는 곤충은 날개를 진화시켜 식물의 꽃가루를 실어 나르는 생태적 동반자가 되었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그렇게 속씨식물은 식물계를 평정했다. 2016년 네덜란드의 빙 제임스는 지구 식물이 약 37만4000종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관다발식물은 30만8000종이고 그중 꽃을 피우는 것은 29만5000종이다. 소나무나 은행 같은 겉씨식물은 기껏해야 1000종을 약간 넘을 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관다발이나 잎맥, 곤충 매개 수분 현상이 개별적이나마 겉씨식물에서 이미 진화했다는 점이다. 속씨식물은 겉씨식물의 몇 가지 특성을 조합하여 자신의 성공을 일궈냈다.

낮에 꽃이나 잎을 열고 밤에 닫는 식물의 수면 운동(nyctinasty)도 그런 특성 중 하나다. 콩과 식물인 미모사는 밤이 되면 잎을 반으로 접어 아래로 툭 떨어뜨리고 파리지옥은 덫을 닫고 소화액을 분비해서 곤충을 그야말로 녹여 먹는다. 중국 윈난(雲南)의 고생물학자 주오 펭은 2억5000만년 전 페름기 식물 화석에서 수면 운동의 흔적을 찾아냈다. 바위에 찍힌 잎 화석 주맥 양쪽으로 대칭적인 구멍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다. 밤에 잎을 닫은 상태에서 초식 곤충의 습격을 받았다고 결론을 내린 펭 박사는 식물에서 발견되는 수면 운동의 역사를 고생대까지 소급할 수 있으리라 추정했다. 고생대를 넘기지 못하고 멸종한 이 기간토프테리드(Gigantopterid)는 현생 속씨식물의 몇 가지 특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분류학적으로는 오히려 양치류와 닮았다.

미모사나 자귀나무 등 일부 콩과 식물의 경우 잎사귀 아래쪽 펄비누스(pulvinus)라는 기관이 움직임을 관장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의 부피를 바꿔 팽압을 조절하는 이 운동 기관은 일주기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

밤에 식물이 잎을 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19세기 후반 다윈은 밤의 추위로부터 잎 표면을 보호하려고 수면 운동이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따뜻한 밤에도 식물은 잎을 닫는다. 잎을 닫지 못하게 하면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밤에 잎을 닫아 물기를 떨군다거나 달빛을 받아 광주기가 작동하지 못하게 한다는 등 여러 가설이 잇달아 등장했다. 더 나아가 밤에 곤충이 잎을 먹지 못하도록 억제한다는 좀 더 복잡한 생태 가설도 나왔다. 잎의 표면적을 줄이면 곤충이 몸을 숨기지 못하게 될 터이고 그러면 그들이 한결 쉽게 박쥐나 올빼미의 먹잇감이 되리라는 가설이다.

수면 운동은 콩과 식물의 우세한 특성이지만 구상나무와 몇 외떡잎식물에서도 발견된다. 그렇기에 이 형질은 비슷한 환경에 적응하고자 계통이 다른 여러 종류의 식물에서 ‘수렴진화’했다고 간주한다. 마치 하늘을 난다는 동일 목적에 봉사하지만 새와 잠자리 날개의 설계도가 완전히 다르듯이.

낮에 무척 센 빛을 받으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잎은 위아래로 휘청거리듯 움직인다. 이런 수동적 현상은 식물이 밤에 움직이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밤에 잎을 닫는 데는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이 관여하며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무의 모든 잎을 일시에 여닫는 행동은 식물 입장에서는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콩과 식물에 이런 현상이 집중되는 데는 분명 까닭이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콩이 뿌리에 혹을 달고 세균을 불러들여 유기 질소 화합물을 만든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밤에 잎을 닫아 초식 동물의 입질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곧 힘들여 확보한 질소를 아끼는 일인 것이다.

콩과 식물은 뿌리에서 이소플라보노이드(isoflavonoid)라는 특수한 화합물을 만들어 질소 고정 세균을 불러들이는 동시에 그들이 거주할 혹을 빚는다. 게다가 이 화합물은 뿌리를 향해 달려드는 곰팡이와 미생물의 침입도 막아낸다. 거의 완벽한 조합이다. 인류가 대기 중 질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유기 질소를 합성하기 전까지 지구는 오직 이런 생화학적 협업에 기대어 운영되었다. 한 줌의 빛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밤에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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