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마감할 무렵, 18일자 경향신문 1면 보도다. “일본은 7개국(G7) 환경장관 회의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관련 환영 성명을 내려다 참가국 반대로 실패했다. (중략) 슈테피 렘케 독일 환경장관은 ‘오염수 방류에 관해서는 환영한다고 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니시무라 일본 경제산업상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 자신의 발언에 실수가 있었다며 정정해야 했다. 한편 독일은 지난 15일 자정을 기점으로 원자력(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했다.”
일본의 거짓말을 그 자리에서 반박하는 외교는 ‘독일’만 가능한가. 전통적으로 국제정치는 상급 정치(high politics)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매체의 발달로 사람들은 국가 대표지도자의 실체를 깨달았다. 불이익이 있을 경우, 언제든지 자국 지도자 대신 다른 나라 시민과 연대한다. 1980년대부터 생태주의, 여성주의 국제정치학은 “개인적인 것(the personal)이 국제적인 것이다”라는 인식에서 기존의 국제정치에 도전해왔지만, 당대는 도전이랄 것도 없게 되었다. 코로나19는 국가 단위를 뛰어넘었다. 일상이 전 지구화된 것이다. 개인의 삶은 글로벌 경제에 의해 좌우된다. 중국의 피자 소비가 늘어나면 치즈 원가가 상승하고 한국의 관련 산업은 타격받는다.
한국처럼 식민주의를 경험한 국가 중에서 독립 후 친제국 세력이 집권하면 후기 식민주의가 시작된다. 반민특위의 실패는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다. 이승만, 박정희 체제와 관련하여 정치학자 심아정은 2013년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박사학위 논문에서 중요한 지적을 했다. 그는 1965년 한·일 회담이 국제정치학에서 중요시하는 국익이나 합리성 모델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들 간의 의리, 인정, 정체성에 의해 결정되었음을 증명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교섭 상대를 ‘적’이 아닌 ‘우리’로 생각했다. 일본 육사 출신에 만주군 경력의 박정희와 일본 정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세력 사이의 이른바 ‘만주국 라인’이 국가를 대표했다. 개인적 친분이 국제로 둔갑한 경우다.
그러나 1917년생 박정희와 1960년생 윤석열의 일본에 대한 인식은 다르고 달라야 한다. 2011년 3월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대규모 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로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다. 이는 최고 위험 단계로 1986년의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동급이다. 오늘날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의 발단이다. 대통령실은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윤 대통령이 방일 과정에서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는 발언이 일본 사회의 언론플레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다. 이번 정권의 외교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우려나 유감,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제2의 만주국 라인?
예전 광우병 파동의 악몽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 정부에서 광우병을 ‘확진’했음에도 광우병 ‘의심’소라고 보도한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국은 2008년 4월, 죽은 소, 죽어가는 소, 병든 소, 주저앉는 소(다우너 소)의 뇌와 척수라도 30개월 미만이면 동물 사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했다. 이 경우 가축들 간의 교차 오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미 강대국들은 자국의 오염 물질을 다른 지역에 투기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굶주리는 중국 인민’의 이미지가 무색하다. 중국은 세계 1위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국으로 연간 가정에서만 9165만t, 식품 서비스 산업은 1800만t을 배출한다. 인구는 인도보다 적은데 음식물 쓰레기는 33%나 많다. 가정에서만 한 해 1250조원을 낭비하고 있다. 다급한 중국 정부는 먹는 방송(먹방)을 금지하는 등 ‘노력’하고 있지만, 중국이 아프리카의 값싼 땅을 매입하여 쓰레기를 버린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탈원전국 독일도 가나와 세네갈에 쓰레기를 수출한다. 쓰레기를 수입한 나라들은 해양에 버린다. 영토의 의미는 변화 중이다. 수출입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지저분한 일(dirty work)’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는 새로운 형식의 무역이 횡행하고 있다. 독일이 홀로코스트에서 가장 극단적인 살상 행위를 독일인도 유대인도 아닌, 동유럽의 소수 민족 중에서 징발한 트로우니키스(Trawnikis) 대원들에게 맡긴 역사를 연상시킨다(이삼성,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윤 대통령, 세계적 지도자 될 기회
모든 사안이 지구적이고 환경 문제는 그 핵심에 있다. 후쿠시마 강진 당시 원전 문제가 제기되기 전에 세계 시민들은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힘내라, 일본! 힘내라 도호쿠(동북 지역)!”를 외쳤다. 이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본의 ‘지진 담당 장관’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부흥상(復興相)은 “지진 발생지가 도쿄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가 비난받고 사퇴했다. 이런 사람, 어디에나 있다. 자국 장관도 지역 차별 발언과 함께 재난지역(도호쿠)을 버린 마당에, 일본이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인접국(한국, 중국, 러시아, 대만 등)의 문제가 아니다. 희석 방류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원전 오염수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태평양의 육지가 북구의 빙하로 사라지고 있다. 적도 부근 태평양 중간 지역에 위치한 키리바시 공화국(Republic of Kiribati)은 33개 섬으로 이루어진 인구 11만명의 작은 나라다. 이 아름다운 나라는 지금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가라앉고 있다. 산호섬으로 이뤄진 키리바시는 평균 해발고도가 2m에 불과해 지금 같은 속도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2050년쯤에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키리바시 국민 전체가 기후난민이 될 상황이다. 2000년대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노테 통은 국민들을 주변 국가에 이주시키고,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 환태평양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2008년 40만㎢에 달하는 이 지역을 ‘해양보호공원’으로 선언하고 어획 및 기타 채굴을 금지했다. 키리바시의 재정이 원양 어선의 입어료 수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익을 포기하면서까지 환경을 지킨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는 일본의 아킬레스건이다. 내가 윤 대통령이라면 전 세계를 향해 이렇게 말하겠다. “일본은 자국에서 일어난 문제는 자국에서 해결하라. 방류는 지구 침략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일관계가 나빠지거나 일본이 한국에 쳐들어올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한·미·일 동맹은 한·일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이 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일본 정부를 비판하면 오염수 공포에 떨고 있는 지구 시민의 지지를 받고, 일본은 고립될 것이다. 또한 자국의 오염은 자국이 책임지는 선례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왕국’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마련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후보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정부의 태생 비화나 윤 대통령의 자질 문제에 관심이 없다. 지금이라도 잘하면 된다. 어쨌든 일본은 후쿠시마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이는 지구의 운명이 달린 문제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중요한 포지션에 있다. 우리의 발언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현 정권은 이처럼 좋은 국위 선양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일본 여론의 협박과 국내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권부터 일본의 방류 움직임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부친이 일본의 장학금을 받았다 해도 윤 대통령이 친일파도 아니고 식민 콤플렉스를 가질 필요도 없다. 그 유명한 어퍼컷, 원전 오염수를 방류하겠다는 이들에게 사용할 때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후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이웃 나라로 협력해가며 잘 지내면 된다.
여성주의는 “가장은 가족을 보호해야 하며, 대통령은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범에 반대해왔다.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구별 자체가 문제이며, 보호자라는 명분으로 ‘남성’은 제1의 시민권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진짜 문제는 가장도 대통령도, 보호해야 할 이들을 보호하지 않는 현실이다.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 가족에게는 폭력을 휘두르면서, 남에게는 굽실거리는 가해자는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