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 얼마나 계획성 있게 짜인 걸까

2023.10.12 20:15 입력 2023.11.16 17:07 수정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내년도 예산, 얼마나 계획성 있게 짜인 걸까

내년도 예산안이 9월1일에 국회에 제출되었으니 이미 한 달이 넘었다. 국회는 국정감사가 마무리된 이후, 그러니까 늦어도 11월 초부터는 본격적인 예산 심의에 들어갈 것이다. 예산안이 제출되고 본격적인 국회 심의가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여기저기에서 예산안 관련 토론회가 열리고 언론은 전문가 논평을 싣는다.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수 정부가 집권하면 재정 전문가들, 특히 진보 성향 재정 전문가들이 늘 하는 레퍼토리가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왜 확장 정책을 안 하느냐” “감세는 부자만을 위한 것이며 낙수 효과는 한참 철 지난 얘기로서 요즘은 성립할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복지 지출 규모가 가장 작은 우리는 복지 확대가 중요한데 연금 지출 등 자연증가분을 제외하면, 실제로 복지 확충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반면에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너무 많다” 등등.

윤석열 정부는 보수 정부다. 그래서 내년도 예산안이 어떻게 짜였을지, 또 그동안 열린 토론회와 언론 논평에서 어떤 비판이 나왔을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정부 예산안은 건전재정을 위해 긴축적으로 짰을 것이고, 진보 성향 학자들은 경제가 어려운데 웬 말이냐며 확장 재정을 요구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내년도 예산안은 657조원에 달하는데, 이는 올해보다 2.8% 늘어난 것이다. 지난 20년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당연히 진보 성향 학자들은 과거에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 했던 비판을 되풀이했다.

보수 정부는 보수 정부답게 예산을 짠 것이며, 또 진보 성향 학자들은 마땅히 할 만한 비판을 했으니, 내년도 예산안 평가는 이 정도로 넘어가면 될까. 너무 밋밋하니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정부는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향후 5년간의 간이 예산, 즉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함께 제출한다. 법에 의한 강제 사항이다. 왜 그럴까? 정부 사업 중 시작부터 끝까지 1년 내 이뤄지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러니 1년의 계획이라도 제대로 되려면 5년 정도의 시계를 갖고 계획을 짜야 하기 때문이다. 우연이겠지만 정권도 5년마다 교체된다. 그래서 집권 초에 세운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그 정권이 향후 5년간 국정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에 집권했다. 그래서 작년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 계획을 알 수 있다. 작년도 운용계획에서는 5년 집권 기간 연평균 예산증가율을 4.6%로 설정했다. 문재인 정부 5년간은 8%가 훌쩍 넘었으니, 이전 정부와 비교하면 확실히 빡빡하다.

한편 작년도 운용계획에서는 2024년도 예산증가율을 4.8%로 설정했다. 이번 예산안의 2.8%와 비교하면 2%포인트가 높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1년 사이에 건전재정에 대한 의지가 더욱 굳건해진 것일까? 의지가 바뀐지는 모르겠으나 재정 수입 전망은 크게 바뀌었다. 조세 수입은 작년에 전망한 2024년도 예측치보다 올해 전망한 것이 50조원 이상 줄었다. 총 재정 수입은 6.5% 감소했다. 재정 수입은 6% 이상 주는데 지출은 2%포인트만 줄인 것이니, 나름 선방한 것일까.

몇 가지 의문이 든다. 하나는 조세 수입 전망치가 1년 사이에 어찌 이토록 바뀌었는가이다. 조세 수입은 경기 영향을 크게 받는다. 1년 전 경기 전망보다 올해 경기 전망이 어둡기는 해도 큰 차이는 없으니, 경기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조세 수입 전망이 대폭 하향한 이유는 올해 조세 수입 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59조원 정도 줄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59조원 펑크가 났으니 예산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내년 세수 예측은 아예 낮춰 잡은 것으로 보인다. 많이 잡았다가 적게 걷히는 것보다는 적게 잡았다가 많이 걷히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싶다.

타당한 세수 예측은 효과적인 재정 운용에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다수의 국가는 정확한 세수 예측을 위해 많은 전문 인력을 동원하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돌발상황이 아닌 한, 예측과 실적이 10% 가깝게 차이 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우리의 세수 예측 실력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 오차는 역대급이다. 어쨌든 실적이 예상을 크게 밑돈 탓에 내년 예측치를 작게 잡으려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수많은 사업의 차질은 어찌할까?

예산 총액 증가율이 낮아졌으니 분야별 예산 증가율도 낮아졌을 것이다. 그런데 감소 정도는 분야별로 다르다. 올해 예산보다 내년 예산이 감소한 분야는 일반·지방행정, 교육, 연구·개발(R&D)이다. 이 세 분야 예산의 올해 대비 증가율은 순서대로 -0.8%, -6.9%, -16.7%이다. 그리고 지난해에 계획했던 증가율과의 격차는 순서대로 -8.4%포인트, -11.3%포인트, -21.1%포인트이다. 이 셋을 제외하면 다른 분야는 그다지 감소하지 않았다.

일반·지방행정과 교육은 그럴 만하다. 이 둘은 지방자치 원칙에 따라 각각 국세의 20% 정도가 기계적으로 배정된다. 국세 수입 감소가 예상되니, 예산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 결국 예산 당국이 재량으로 줄인 분야는 R&D가 거의 유일하다. 왜 R&D일까? 정부 측 설명으로는 지난 정부에서 R&D 예산이 빠르게 증가했는데, 그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집행이 늘었다는 것이다.

비효율적 사업 구조조정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계획에 따라 이뤄지는 게 정상이다. 지난해까지는 계획에 없다가 갑자기 급격히 깎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예정된 것이 아니었던 탓에, 이공계 각 분야는 사업 계획을 다시 짜느라 난리다. 참고로 SOC와 산업지원 분야는 오히려 지난해 계획치보다 크게 증가했다. 글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따지면 SOC와 산업지원도 만만치 않을 텐데. 설마 내년에 치를 총선과 관련된 것은 아닐 것이다.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로 혁신의 중요성을 설파한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슘페터는 ‘예산을 이해하는 사람은 국가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서 예산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앞날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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