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공론화 과정이 성공하려면

[김태일의 좋은 정부 만들기]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공론화 과정이 성공하려면

지난 10월30일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안(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안)을 발표한 후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개혁 의제 가운데 가장 핵심이라 할 보험료율 상향에 대해 얼마를 높이겠다는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않은 채, 추후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전문가 위원회를 가동한 끝에 내놓은 결론이 ‘추후 결정’인지라 맹탕 개혁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질 만하기는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공론화 과정을 통한 결정이라는 것이 맞는 방향이기는 하다.

어느 나라나 연금 개혁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 제고인데, 이를 위해서는 더 내거나 덜 받아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혜택이 줄거나 부담이 느는 것이니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지 않은 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 외국 사례를 보면 정부가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탓에 정권이 넘어간 경우가 여럿이다. 금년에도 프랑스가 국민 합의 없이 개혁안을 발표한 뒤 대규모 시위로 홍역을 치렀다. 고작(!) 수급 연령과 정년을 1~2년 높이려는 것인데도 그랬다. 연금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으로 유명한 스웨덴과 영국은 국민의 합의 도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가 공론화로 결정하기로 한 것은 두 가지다. 물론 보험료율 인상 수준이 그중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소득대체율 상향 여부이다. 소득대체율은 급여 수준을 판단하는 지표로서 연금 급여액이 근로 시기 소득의 몇%인지를 나타낸다. 그동안 국민연금 급여의 소득대체율은 조금씩 낮아져서 2023년 현재는 42.5%이고 최종적으로 40%가 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급여액이 너무 낮으니 소득대체율을 45% 혹은 50%로 올리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래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이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공론화를 통한 결정 자체는 긍정한다. 그리고 공론화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어 충실한 합의 도출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공론화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다양하다. 과거 사례를 떠올려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공론화 과정의 참여자(시민배심원단)가 결정해야 할 의제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결정에 따른 결과(파급효과)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용을 잘 모르고 파급효과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리는 찬반 결정이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보험료율 인상 수준 결정에서도 알아야 할 내용이 많다. 하지만 보험료율을 빠르게 충분히 높일수록 지속 가능성이 높아지고 미래세대 부담이 경감된다는 것이 명확한지라 내용과 파급효과 이해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소득대체율 상향 여부 결정에 필요한 지식은 좀 복잡하다. 일단 두 가지를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지속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이다. 지속 가능성이 문제 되는 것은 낸 것보다 많이 받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성을 달성하려면 결국 낸 것과 받는 것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 40% 소득대체율에서 수지 균형을 이루려면 보험료율이 최소한 15% 이상은 되어야 한다(이것도 매우 낙관적인 가정하에서 그렇다). 여기서 소득대체율을 높이면? 원래 목표보다 보험료율을 더 높여야 한다. 소득대체율이 5%포인트 높아지면 보험료율을 추가로 2%포인트 이상 높여야 추가분의 수지 균형이 맞는다.

국민연금 급여액은 적다. 2022년 신규 수급자를 기준으로 해도 월 급여액 평균은 70만원 미만이다. 아무리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보충한다고 해도 너무 적다. 그래서 나는 비록 재정부담이 커지더라도 급여액을 높이는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지속 가능성이 걱정이라지만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기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연금은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하지만 나는 소득대체율 인상에 찬성하지 않는다. 노후소득 보장에 효과적인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는 40년 가입(보험료 납부) 기준이다. 그런데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2022년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19년 정도에 불과하다. 19년 가입하면 실제 소득대체율은 19%일 뿐이다.

다른 나라는 다르다. 스웨덴과 독일 수급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거의 40년이다. 유럽 국가 전체 평균도 35년이 넘는다. 가입기간이 다른 나라의 절반 정도이니 급여액이 그토록 적은 것이다. 국민연금 신규 수급자의 가입기간이 유럽 평균만큼 되었다면 월 급여액은 130만원이 되었을 것이다.

평균 가입기간이 짧은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소득계층별 격차가 심하다는 점이다. 상위 20%의 평균 가입기간은 25년 정도인데 하위 20%의 평균 가입기간은 그 절반 정도이다. 소득대체율 상향으로 늘어나는 급여액은 가입기간에 비례한다. 그래서 소득대체율 상향의 혜택은 상위 소득 집단에게 집중된다. 내가 이전에 계산한 바로는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였을 때 상위 20%의 월 급여액은 25만원 늘어나는 데 비해 차하위 20%(하위 20%는 너무 적어서 계산하지도 않았다)의 월 급여액은 6만원 남짓 늘어난다. 하위 소득계층은 수급자 가입기간이 짧을 뿐만 아니라 수급률 자체도 훨씬 낮다. 미수급자는 소득대체율 상향의 혜택이 아예 없다. 참고로 유럽 국가는 소득계층에 따른 가입기간 격차도 매우 작다. 글쎄, 소득대체율 상향의 재정 안정과 급여액 상승에 미치는 효과가 이렇다는 것을 안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득대체율 상향에 동의할까.

소득대체율 상향이 좋은 대안이 아니라면 급여액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가입기간을 늘리는 것, 그러면서 소득계층에 따른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연금은 근로기간에 보험료를 내고 일을 그만둔 노후에 급여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 국가보다 더 오래 일한다. 그런데도 왜 보험료 납부 기간은 턱없이 짧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곧 국회 주도의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된다고 한다. 나는 제안한다. 공론화 의제에 가입기간 확충도 포함하자고. 그래서 노후소득 보장 강화 대안으로서 소득대체율 상향과 가입기간 확충 중 선택하게 하자고. 물론 각각의 내용과 효과를 충분히 제대로 알린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 고려대 교수·좋은예산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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