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자초한 검찰공화국

2024.02.04 20:41 입력 2024.02.04 20:42 수정

검찰총장이 사임 후 1년 만에 대통령에 출마하고 검사에서 임용된 법무부 장관이 여당 대표로 옮겨 앉았다. 현직 신분으로 총선 출마를 위한 정치 행위를 해 물의를 빚는 검사들도 생겼다. 역시 검사 출신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검사가 정치에 맛 들이면 사법적 정의는 사라지고 세상은 어지러워진다”고 우려했다.

검찰공화국, 검찰정권이라는 말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입에 오르내렸다. 게다가 4월 총선에 출마하는 전·현직 검사가 40명이 넘는다고 한다. 입법조사처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도 법조인 출신은 15.3%를 차지해 정당인 출신 21.3%에 버금가는 비율을 보였다. 법조계 출신 의원의 비율이 미국과 영국에서 감소하는 추세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변호사를 포함한 법조계 인물이 정치계로 진출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미국과 독일의 연방하원에서 법조인 출신 의원은 각각 29.9%와 22.8%에 달한다. 하지만 이 나라의 경우도 판검사 출신이 아니라 변호사 출신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영국 하원은 7.2%, 일본 중의원은 3%에 그쳤다. 반면 우리나라에선 19대 국회에서 감소하기는 했으나 이후 다시 증가해 16대 국회 이후 꾸준히 14~20%를 차지해왔다. 정당인을 제외한 특정 직업군으로서는 가장 큰 비중이다.

특정 직업이나 집단이 정치계에 유독 많이 진출하는 것은 그 직업이나 집단이 정치권력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은 영향을 주고받는 정도가 크다는 것이다. 무력을 가진 집단이 정치권력과 밀착되는 경우에 버금가는 위험이 수사와 재판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 정치권력과 밀착하는 경우다. 주요 국가 권력을 관장하는 이 기관들에 정치적 중립성이나 독립성을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현재 검찰 권력은 정부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입법부에도 더욱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려 한다.

법을 다루는 법조인이 법을 제정하는 입법부 진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법에 따라 심판하는 판사와 법에 따라 수사하고 법을 집행하는 검사는 법의 기능과 내용을 잘 이해하지만, 법의 제정에는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 제정은 구성원 각인의 행복을 증진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집단과 개인의 이익을 조정하는 정치 행위다. 입법조사처의 분석에서도 법조인 출신 의원이 사법 관련 입법 활동에서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지만, 법안 발의나 가결률 등 전반적인 입법 활동의 성과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법조인의 의회 진출은 법과 정의가 일치하지 않을 때 민주 절차에 따라 이를 일치시키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면 바람직하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기능인으로서 자기 집단의 이익을 지키거나 법 제정 권력을 차지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계에 진출하는 법조인이 많다는 것은 좋게 보아도 법이 정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정치권력이 법을 지키지 않는 절대 권력으로 작동하고 이를 탐하는 기능인이 많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정치인의 잘못도 적지 않다. 사법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정치적 사건을 고소 고발하는 행위가 잦다. 결국 정치 행위에 대한 판단까지 검찰과 사법부에 맡겨 버린 셈이다. 이를 조사하고 재판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사법부는 우리 정치의 생리를 파악하고 우습게 봤을 것이다.

물론 명백한 범죄는 당연히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하지만 법으로도 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법부와 검찰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당시 불거진 ‘비속어 발언 보도’와 관련해 MBC에 정정 보도를 하라는 판결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 행정권 남용에 대한 무죄 판결, 김건희 여사의 각종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 방기 등이 대표적 예다.

정치인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 민주 정치에서 중요한 자질은 도덕성과 책임감, 공감 능력과 대변 능력이다. 독선과 무책임은 무능과 같다. 털지 않아도 먼지 날리는 사람이 적지 않고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치인이 드물지 않다. 부도덕하고 무능한 정치가 또 다른 부도덕하고 무능한 권력인 검찰 정권을 불러들인 것이다.

정치가 가까이해야 할 것은 또 다른 권력기관이 아니라 국민과 국민의 삶이다. 그래야 일반 국민이 정치를 신뢰하고 다양한 직업과 집단이 의회에 진출해 삶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 22대 총선은 과연 그 계기가 될 수 있을까.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