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은 해결되지 않는다

2024.03.05 20:05 입력 2024.03.05 20:09 수정

[정희진의 낯선 사이]저출산은 해결되지 않는다

작년 한국의 출생아 숫자는 23만명이다. 그중 4분기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0.6명대를 기록했다. 0.5명대도 가능하다고 본다. 언제부터인가 저출산 관련 뉴스를 접하지 않는 날이 없다. 어딜 가도 “저출산, 저출산…”이다.

최근에는 ‘저출산’이 문제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로 ‘저출생’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인식에 반대한다. 저출산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저출산은 여성의 진화생물학적 적응이자 이탈리아 페미니스트 마리아 델라 코스타의 용어대로 “파업”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여성은 시민의 정당한 권리로 파업을 행사한 것이다. 저출산은 정치적 행위자로서 여성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발본적(拔本的) 문제제기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국가와 사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저출산은 극복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저출산을 해결한답시고 엉뚱한 방향으로 인력과 비용을 쓰고 있으니 안타깝다. 젠더 문해력이 ‘제로’인 결과다.

나는 건국 이래 국방비용과 4대강 사업을 제외하고, 저출산만큼 어리석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경우를 알지 못한다. 그나마 국방비나 4대강 사업보다 저출산 대책 비용은 환경 파괴가 덜하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에서 출산하지 않는 것은 생명체의 자기 보존 원리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혼 여성이 몇명 이상의 자녀를 낳으면 현금을 주는 정책은 돈으로 여성의 출산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 현금이 제대로 지급되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보상을 한다 해도 저출산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에 대한 근본적인 공포는 근대국가 초기의 인식, 즉 인구가 국력이라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7세기가 아니고 북유럽 국가 중에는 인구가 서울시 인구의 반, 수도권 인구의 4분의 1인 500만~600만명인데도 ‘선진국’이 많다. ‘노동력의 고령화’도 청년 실업을 고려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한편 저출산을 해결하려는 시도보다는 태어난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자는 의견도 많다.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18세에 보육원을 나와 독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20대 자살을 예방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저출산 대책이다. 동성혼 합법화와 그들의 출산이나 입양을 장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구나 아는 저출산 이유

나는 출산율 제고를 바라는 이들을 위해 저출산의 가장 실제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주고’ 싶다.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성 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에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에서 각자도생이 아니더라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시민으로서 경제적 독립은 필수적이다. 요즘 현모양처가 꿈인 여성은 없다. 문제는 여성이 경제활동과 결혼생활의 병행이 매우 어렵다는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남성도 어려운 형편이고, 남성의 비혼과 만혼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예전 여성들은 이중노동 현실에, 다음의 세 가지 방식으로 대처했다. 첫 번째는 노동자임을 포기하고 결혼 후 “집에 들어앉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지위는 높지 않고, 전업주부의 노동도 만만치 않다. 두 번째 방식은 규범적인 기혼 여성이 되기를 포기하고 비혼을 선택, 자기 커리어를 중심으로 삶을 기획하는 ‘명예 남성’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평판은 좋지 않았고, 아내의 내조를 받는 남성들과 본격적으로 경쟁해야 했다. 세 번째 경우는 직장생활과 결혼생활 공·사 영역 양쪽을 오가는 슈퍼우먼이 되는 것이었다. 한국의 기혼 여성 노동자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울트라 하이퍼 메가톤급 슈퍼우먼이었고, 2~3배로 일하면서도 죄의식에 시달렸다.

‘여성’과 ‘노동자’가 양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여성들은 위 세 가지 방법 중 그 어떤 것도 ‘인간의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성들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비난을 뚫고 혹은 경제력이 있는 여성에 대한 호감을 이용해 비혼을 선택했다. 그 결과가 당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저출산이다.

직장생활에서의 성차별, 결혼생활에서의 성차별(남성이 육아와 가사노동을 동등하게 분담하지 않는 상황)이 저출산의 원인인데, 이 구조는 기후위기만큼이나 개선되기 어려운 문제다. 직장 내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고, 남성 개인의 변화는 본인이 대오각성하고 노력해도 어려운 일이다(인구의 수도권 집중도 큰 원인인데, 이 글에서는 생략한다).

최근 영국 공영방송 BBC는 한국의 독특한 저출산 현상에 대해 집중 보도했다. 긴 노동시간, 직장 내 불이익, 주거비, 사교육비 등 총체적인 문제가 지적되었다. BBC 서울 특파원은 1년간 전국을 돌며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고 한다. 일종의 필드워크(현장 연구)를 한 것이다(한국의 정책입안자들은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다음은 연합뉴스 런던 특파원이 전한 내용이다.

“집안일과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남자를 찾기 어렵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에 대한 평가는 친절하지 않다.” “서울 외곽에 살면서 저녁 8시에 퇴근하니 아이를 키울 시간이 나지 않는다.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낙오자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크다. 월요일에 출근할 힘을 얻기 위해 주말에 링거를 맞는 것이 일상이다.”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떠나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이 있다. 여동생과 뉴스 진행자 두 명이 퇴사하는 걸 봤다.” “기업 인사팀에서 근무하는데 여성은 육아휴직 후 해고되거나 승진에서 누락된 경우가 많다.” “아이를 좋아하지만 일하고 즐기다 보니 너무 바빴고 이젠 자신의 생활 방식으론 출산·육아가 불가능함을 인정한다.” “남편에게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눈빛으로 답을 대신하며, 설거지를 시키면 항상 조금씩 빠뜨린다. 믿을 수가 없다.”

이 같은 여성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는 저출산 대책은 백약이 무효다. 여성들은 늘 과로와 분노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고 이를 지켜보는 남성 가족 구성원 역시 뭔가 불편하고 억울하다.

여성의 삶은 공·사 영역에 걸쳐 있다. 남성의 삶은 여성의 경험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고 폭이 좁다. 여성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수시로 오간다. 가사노동을 분담한다고 해도, 성별에 따라 눈에 보이는 일거리가 다르다. 남성에게는 일이 아닌데 여성에게는 일이 된다.

맞벌이 부부들과 함께 살면서 가사노동, 육아 분담을 조사한 미국의 여성학자 알리 혹쉴드는 자신이 연구를 이렇게 요약했다. “여성은 온갖 감정노동을 다해 남성에게 가사노동을 가르쳤다. 그 결과 각자 할 일이 정해졌다. 아내는 가족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은 반려견에게 먹을 것을 준다. 아내는 매일 집안 청소를 하고 남편은 1년에 두 번 지하실 청소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저출산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응

직장생활도 경쟁이고, 육아도 경쟁인 시대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말을 재인용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물고기(기본소득)를 주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정책에는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이 없다. 저출산은 후대에 비인간적인 경쟁 사회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슈퍼우먼으로 살면서 가족과 직장 동료의 눈치를 보고, 모두에게 욕먹고 늘 죄의식에 시달리며 매일 실수를 하고 과로사하고 싶은 여성은 없다. 아니,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런 삶을 왜 여성에게만 강요하는가. 사회는 전업주부를 어떻게 보는가. 무능하거나 유한 계층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집에서 논다”고 한다. 아이를 낳은 여성을 “맘충”이라고 부른다. 자녀를 낳아도 욕먹고 안 낳아도 욕을 먹는다. 안 낳으면 이기적이고, 낳으면 벌레다.

이런 사회에서 출산 독려는 인권 침해다. 여성들은 최소한의 자구책을 찾았을 뿐이고, 이는 여성들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사람의 소중함, 지구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실천이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저출산 대책 공약을 내놓는 후보나 지역 발전(환경 파괴)을 외치는 후보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후보에게 투표하자. 진정,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말이다.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 월간 오디오매거진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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