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독선 경쟁’의 중간성적표

2024.04.17 22:01 입력 2024.04.17 22:04 수정

역시 예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의 압승이다. 누가 더 오만하고 독선적인가를 겨룬 ‘오만·독선경쟁’ 이야기이다. 물론 박용진 의원에 대한 공천 거부 등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보여준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의 오만과 독선은 정치적 상식을 넘어선 한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에게는 이것조차 윤 대통령이 보여준 오만과 독선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했다. 특히 야권에 대해서는 매서운 법의 칼을 겨누면서도 김건희 여사와 해병 사망사건 외압의혹 핵심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장관 등 자기편에는 너무 관대해 윤 대통령 쪽에서 하면 로맨스이고 민주당이 하면 불륜이라는 ‘윤로민불’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 윤로민불이 친이재명계에서 하면 로맨스이고 친문재인계 등이 하면 불륜이라는 ‘명로문불’에 대한 분노를 압도했다. 주목할 것은 항소심에서까지 유죄판결을 받은 조국, 여러 사건의 피의자인 이 대표만이 아니라 돈봉투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고 검찰에 출두해 조사받은 허종식 의원 등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사건 피의자 다수가 당선된 것이다. 윤석열 진영과 야권에 대한 검찰의 이중잣대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심판한 것이다.

총선 결과로 윤 정부의 독선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총선 압승으로 공천과정 등에서 보여준 이 대표와 친명계의 오만과 독선이 잊히고 묻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세 가지 선택이 있었다. 첫 번째는 계파를 넘어서 박용진 같은 비명계 우수 의원들도 대폭 공천하는 통합리더십으로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명계는 경쟁력이 있고 뛰어나더라도 과감하게 잘라내 총선에서 안 좋은 결과를 거두더라도 당을 작지만 자신의 방탄을 위해 똘똘 뭉칠 수 있는 ‘강소방탄정당’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와 마찬가지로, 공천과정에서 앞으로 자신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경쟁자들을 제거해 당을 ‘이재명당’으로 만들고도 총선에서 승리하는 경우다. 이 대표는 당연히 세 번째를 바랐을 것이다. 문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간의 선택이다. 공천 과정을 보면, 이재명 후보의 선택은 두 번째를 선호했다고 볼 수 있다. 비유를 들자면, 비명들에게 공천을 줘서 140석이 되느니 친명만으로 120석 되는 것이 낫다는 독선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윤 대통령의 ‘시의적절한 도움’으로 민주당과 범야권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세 번째 경우가 실현됐다. 당내 경쟁자들을 제거해 당을 ‘이재명당’으로 사당화하고도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으니, 이 대표는 당내 투쟁과 대정부 투쟁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모두 승리하는 최상의 결과를 얻은 것이다. 민주당 공천파동 당시 민주당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지지도에서 국민의힘에 역전당하기도 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이종섭을 사실상 해외로 도피시키는 등 오만과 독선을 계속하면서 승기를 잡았으니, 이 대표는 참 운이 좋았다. 아니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이 대표가 총명하고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하겠다. 이 대표가 많은 비판 속에 총선 패배를 무릎 쓰고서 오만한 공천을 했을 때는 “내가 아무리 개판을 쳐도 윤 대통령이 더 개판을 쳐 총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총선은 중간평가에 불과하고 대선 등 ‘더 큰 시험’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 대표가 총선 승리에 도취되어 총선 공천과 같은 오만과 독선을 계속해 나간다면, 대선은 이번 총선과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물론 국정방향은 옳은데 소통이 문제라는 발언이 보여주듯 참패에도 윤 대통령이 별로 바뀔 것 같지 않지만, 총선 압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을 안주하게 만듦으로써 ‘축복을 위장한 저주’가 될 수 있다.

걱정은 지난 대선 패배에도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성찰이 아니라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집단최면에 빠졌는데 압승 뒤에 자기성찰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설사 다음 대선에서 이 대표가 승리하더라도, 걱정은 남는다. 이번 공천파동을 볼 때 설사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한국정치의 병폐인 승자독식주의와 윤석열식의 오만과 독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같은 편끼리 모인 자기 당내에서조차 다른 계파를 인정하지 않고 공천학살을 통해 승자독식주의로 당을 사당화하는데, 대권을 잡는다고 갑자기 바뀌어 협치로 나아가겠는가? 현실이 이러하기에, 참패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고 압승한 민주당 역시 어느 때보다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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