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

2024.05.29 20:23 입력 2024.05.29 20:25 수정

5월 초 연휴 풍경. 집 나가 혼자 사는 다정한 따님도 다녀가고 우리 부부와 함께 사는 90대 노모를 찾아뵙기 위해 형제들이 바삐 다녀갔다. 흔한 동네 식당도 줄을 서야 했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차 한 잔 마시길 기대하며 찾은 카페는 시장통을 방불케 한다. 용돈과 선물이 오가고 가족의 온기가 가득한 시간이었다. 정해진 때에 맞춰 그래도 우리가 가족임을 확인하는 의식을 치른 후 이제 다들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 입양의날, 부부의날, 가족과 관련된 기념일이 가득한 5월은 ‘가정의달’이다. 기념일 이름만 보아도 가정의달이 기념하는 ‘가정’은 여전히 혼인, 혈연, 입양 관계만 인정하는 정상가족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이상한 정상가족’이 불편하다.

나는 이전에 서로 몰랐던 10가정이 만나 함께 지은 집, 공동체주택에 살고 있다. 공동체를 알게 되니 그 가족이 불편하다. 이 가족은 맞고 저 가족은 틀린다며, 함부로 1인 가구와 결손가정이라 부르며 선 밖으로 밀어내는 그 가족이 불편하다. 공동체를 이루어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 보니 오로지 내 가족 챙기기에 급급한 그 가족이 답답하다.

혈연과 무관하게 함께 살아가는 경제적 생활단위를 의미했던 가족이 지금처럼 혈연 중심으로 쪼그라든 것은 인류 역사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는 현상에 대해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스 벡 게른스하임은 “가족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라고 물었고 “새롭고 다양한 가족들이 온다”고 답했다. 의존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존재로서 다양한 가족의 등장을 이야기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2021년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을 통해 비혼, 동거 등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다양한 가족 구성을 법 제도 안의 가족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여가부는 입장을 바꿔 법개정 계획을 철회하였다. 이미 실재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과 우리 사회의 가족 변화를 부정하는 이 정부의 무지하고 무책임한 퇴행이 안타깝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소중하다. 하지만 의지할 곳이 가족밖에 없다면, 아니 그 가족조차 없다면, 그 가족이 힘이 아닌 짐이 된다면? 개인은 행복할 수 없으며 사회는 불안할 것이다. 우리가 다양한 가족을 품지 못한 채 가정을 강조할수록 가정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1인 가구 1000만 시대다. ‘1인 가구’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꿔보자. 1인 가구라고 하면 뭔가 부족하거나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가족을 이루기 전의 임시적 상태로 보는 시선이 여전하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개인처럼 여겨지는데, <에이징 솔로>의 저자 김희경은 말한다. “솔로는 혼자 살지 않는다”라고. 느슨하지만 친밀하게 서로를 아끼고 돌보는 사람들. 1인 가구는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고 확장하는 주체다.

누군가에겐 행복한 시간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그런 ‘가정의달’은 이제 그만하자. 우리 곁의 다양한 가족, 이웃과 함께하는 그런 5월을 만들어 보자. 어버이날, 부부의날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의날’, ‘이웃의날’도 만들자. 생각만 해도 좋다!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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