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는 알고 있었다

2024.06.02 20:59 입력 2024.06.02 21:40 수정

3년 전쯤, 가족 여행을 떠났을 때 일이다. 가족과 함께 예약한 방에 짐을 풀고 창밖을 보기 위해 커튼을 걷는 순간, 천장 모서리에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벌집이었다. 살펴보는 중에 말벌이 쏜살같이 날아오기에 우리 가족은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를 알리자, 호텔 직원도 놀라 달려왔다. 이후 호텔 측에서 취한 조치는 빠르고 정확했다. 먼저 방을 바꿔주었고, 119에 신고한 뒤 출동한 대원과 함께 벌집을 떼어냈다.

그런데 만약 그때 호텔 측에서 벌집을 처리해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호텔을 이용하는 손님이면서도 쉼을 누리기는커녕 내내 불안에 떨며 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렸을 것이다. 벌이 벌집을 만든 건 호텔 입장에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해도, 벌집이 있다는 걸 인지한 이상 호텔 측에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도의적 의무가 생겨난다.

올해 초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서울대 딥페이크 범죄 사건에 대해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무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익명의 가해자가 10명이 넘는 피해자들의 얼굴이 합성된 음란물을 제작하고 이를 유포·협박해왔다고 한다. 이러한 피해 사례에 대해 경찰에 신고했으나 경찰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수사를 중단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건 경찰이 아니라 피해자들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가해자를 직접 쫓았고, 이윽고 가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붙잡아 직접 경찰에 넘겼다. 이 모든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고 심적으로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피해자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가해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됐다.

그가 저지른 딥페이크 범죄는 피해자 얼굴 사진을 음란물에 합성하여 마치 피해자가 등장하는 듯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것이다. 이러한 합성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얼굴이 촬영된 원본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는 피해자들의 얼굴 사진을 어디에서 얻었을까? 그것도 10여명의 사진을. 출처는 바로 카카오톡이었다. 카카오톡은 상대의 전화번호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프로필 사진을 조회할 수 있다. 열람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캡처 기능을 이용해 손쉽게 프로필을 캡처할 수도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프로필 사진, 제한도 제약도 없는 캡처 기능. 이러한 요소들이 딥페이크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지어 그런 피해 사례가 있다는 것마저도 카카오는 이미 알고 있었다. 2019년 여성신문의 취재 보도에서 카카오는 “피해 사례를 인지하고 있고 사용자 보호를 우선시하지만, 스마트폰 캡처 기능은 개인적인 사용이기에 이를 서비스로 통제하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라고 답한 바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는 ‘기술적인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고도 했다. 다시 말해 기술적으로는 캡처를 막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에서 서비스하는 카카오웹툰만 해도, 웹툰을 캡처하여 불법적으로 퍼 나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자가 화면을 캡처할 경우 화면이 하얗게 촬영된다. 여론을 의식했는지 이 사건 후 카카오톡에는 멀티 프로필이 생겨났다. 멀티 프로필이란, 내가 지정한 사람들에게만 내 프로필 사진이 보이는 기능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여전히 캡처는 유효하다.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이 보도된 후, 지인들은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얼굴 사진을 속속 내렸다. 그외에도 많은 사용자가 프로필 사진을 불안해한다는 기사마저 보도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카카오톡에서 프로필 사진은 여전히 캡처가 가능하다. 여기 벌집이 있다고, 실제로 크게 다친 사람도 있다고 끊임없이 외치는데도 왜 그들은 벌집을 치우지 않는가. 카카오는 캡처의 유해성도, 기술적 해결책도 알고 있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다.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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