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호와 은행나무

2024.06.03 20:30 입력 2024.06.03 20:33 수정

이철호라는 사람을 아는 분은 드물 것이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유명 인사가 아니다. 사회에 큰 업적을 남기거나 독립운동을 한 인물도 아니다. 오늘 소개할 인물은 나무를 살린 한 사람의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동식물을 좋아했던 그는 산에 자라는 식물을 가져와 화분에 기르는 것을 즐겨했다.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하고 흙과 식물에 대한 연구를 집중하여 ‘생명토’라는 조경용 토양을 개발하기도 했다.

1990년 이철호는 경북 안동의 임하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용계리 수몰지구 내에 은행나무 이식 공사를 맡게 되었다. 마을의 중심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할배 은행나무는 700여년 된 노거수로 높이 약 35m, 줄기 둘레 약 14m, 무게 약 600t이었으니 이식 자체가 무리였다. 더구나 나무를 뽑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라는 위치에서 위로 약 15m를 들어올리는 이식 공사로, 전무후무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은 ‘나무가 고사하면 공사비 전액을 변상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 그는 지성으로 고유제를 드렸다.

“유세차 경오 9월19일 11시 엎드려 신께 감히 고하나이다. 이철호는 생애의 명예를 걸고 이 나무를 기어코 완전하게 이식하여 영원히 생존 활착되도록 할 것을 맹세하면서 나라로부터 이 작업을 위임받아 오늘 착공하게 되었습니다.”(류희걸, <안동에 왔니껴>)

나무 주변에 철제를 보강하고 매일 조금씩 들어올리는 상식(上植) 공사는 1990년 말에 시작하여 1993년 초에 끝났다. 당시 투입된 예산이 약 27억원으로 막대한 비용이었다. 용계 은행나무 상식은 이집트 아스완 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했던 누비아 유적을 연상케 한다. 현재 위치인 강변 위쪽으로 이전 복원된 누비아 유적을 계기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도가 시작되었다.

이철호는 공사가 마무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지병이 있었던 그가 은행나무를 살리고자 가슴을 졸이며 애를 쓴 것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노심초사했을 그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수백년 동안 그 땅을 지켜왔던 나무 한 그루를 살려내겠다는 그의 집념과 열정. 아마 은행나무도 그의 지극 정성에 탄복하지 않았을까.

이제 상식한 지 어언 30여년이 지났다. 수장될 뻔했던 노거수를 관과 민이 협심하여 살려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수세가 약 80% 가까이 회복되었다 한다. 그의 염원이 이루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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