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의 신곡 ‘How Sweet’는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기분 좋게 튀어오르는 총천연색 뉴트로 사운드, 하이파이브를 보내고 싶은 경쾌한 춤 동작을 볼 때면 과거에 도착한 기분이 든다. 짙게 태닝한 피부에 코 피어싱을 한 1990년대 ‘추구미’의 현신 같았던 채리나, “너는 옷이 그게 뭐니?”에서 ‘그게’를 담당하던 힙합바지를 떼로 입고 나와 공연하던 영턱스클럽이 떠오른다. 요즘 많은 이들이 뉴진스가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가장 예쁘고 쿨한 스타일을 가져와 재창조한 뉴진스의 세계관은 당시를 살아본 이들에겐 힙합바지가 ‘그게’에서 ‘옷’으로, 댄스가요가 문화권력의 가장자리에서 핵으로 변모해온 세월의 격차를 뛰어넘어 젊은날의 자신을 만나게 한다. Y2K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즐기는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에겐 또 다른 감각으로 그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노스탤지어란 한때의 웃음이 담긴 메아리다.” 노스탤지어에 대한 수많은 정의 중 내가 가장 동의하는 이 표현은 챗GPT에게 얻었다. ‘How Sweet’에는 이 ‘메아리’가 있다. ‘뉴진스 엄마’를 자청하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하이브 경영권 내홍에 휩쓸리고, 그로 인해 뉴진스가 자극적인 여론전의 희생양이 된 상황에서도 그들의 메아리는 선명했다. 무대에 오른 뉴진스의 모습은 슬퍼도 울지 않는 안쓰러운 캔디가 아니라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토요일에 뭐 하냐고 묻는 친구 같았다. 그 모습이 상처 입힐 수 없는 추억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아일릿의 소속사 ‘빌리프랩’(하이브 산하 레이블)의 뉴진스 카피 의혹도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1990년대 최고 인기 가수 룰라가 1995년 말 일본 보이그룹 ‘닌자’의 ‘오마쓰리 닌자’를 베껴 곡을 만든 사실이 밝혀지며 활동을 중단했다. 스포츠신문 헤드라인에 ‘표절’이 심심찮게 등장하던 시절이다. 물론 민 대표가 주장한 빌리프랩의 뉴진스 카피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몇몇 장면의 완벽한 유사성은 지식재산권 개념이 희미하던 과거를 소환한다. 그나마 당시엔 ‘레퍼런스’가 바다 건너에 있었다. 또한 까발려진 후엔 인정하고 활동을 중단하는 최소한의 윤리가 있었다.
그러나 빌리프랩은 엘리베이터로 10초면 올라가는 동료 레이블의 창작물을 카피했다는 문제 제기를 받는 상황에서 아티스트를 방패 삼아 민 대표를 고소했다. 이에 관한 논의의 줄기는 이제껏 대중문화에서 콘셉트의 소유권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느냐로 흘렀다. 다소 세련된 차원의 논의 같다. 본질은 경영의 도덕적 해이가 콘텐츠로 흘러든 결과라고 봐야 한다. 문화산업을 이끄는 기업 내부에서 벌어졌다고 믿을 수 없는 이 공방전은 민 대표가 내부고발한 음반 밀어내기와 ‘개저씨’들의 거래처 룸살롱 접대, 무고한 아티스트를 끌어들인 양측의 볼썽사나운 언론 플레이와 한 몸통인 것처럼 보인다. 기업이 투명하고 상식적인 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맞다. 민희진씨가 대표직을 유지하게 되면서, 그가 사태의 발단이라 주장한 빌리프랩의 뉴진스 카피 의혹은 다소 지겹고 덜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이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처음부터 하나씩 꺼내볼 적기이다. 가장 열심히 복기해야 할 주체는 하이브와 민 대표다. 시가총액은 언젠가 회복될 수 있지만, 품위를 잃은 문화산업의 손해는 쉽게 메울 수 없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초만 오르내리면 만날 수 있는 양측이 이제 여론이 아니라 얼굴을 맞대고 성숙한 해결책을 모색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