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폭력 가해자의 ‘역고소’ 남용 막을 대책 강구해야

2019.07.21 20:37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무고 혐의로 고소한 사건 가운데 84.1%가 불기소 처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소가 이뤄진 사건 중에서도 15.5%는 무죄 선고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론적으로, 전체 고소 사건 가운데 최종 유죄까지 이르는 경우는 6.4%에 불과하다. 무고 혐의로 고소당한 피해자 100명 중 94명은 성폭력 피해에다 무고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쓰며 이중의 피해에 시달리는 셈이다. 대검찰청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 19일 양성정책평등포럼을 열고 이 같은 결과를 공개했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한 이후 일부에선 성범죄에 대한 허위고소가 많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다.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폭력 무고가 전체 무고 사건의 40%’라며 무고죄 형량 강화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의 구체적 사건처리 결과를 토대로 성폭력 무고 통계가 공개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성폭력 가해자들이 ‘역고소’를 남용하고 있음이 실증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강도나 폭력을 비롯한 대부분 범죄의 피해자들은 지지와 공감을 받는다. 유독 성범죄 피해자들만 ‘원인을 제공한 것 아니냐’는 피해자 책임론, ‘꽃뱀 아니냐’는 불신에 시달린다. 나아가 무고죄나 명예훼손죄 등의 수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고소함으로써 역공을 가하고, 스스로의 위치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교묘하게 이동시킨다. 가해자가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강자일 경우 약자인 피해자는 위축돼 대응 자체를 포기하기도 한다.

대법원은 최근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당했다”고 주장했다가 무고죄로 고소당해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여성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여성이 제기했던 성폭력 혐의에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이를 무고죄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의 역고소 남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검경은 성폭력 무고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가해자의 고소가 외려 ‘무고 가능성’은 없는지 판단할 필요도 있다. 법원은 성폭력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때 무고죄 고소 사실이 있었다면 양형에 반영해야 옳다. 변호사업계도 무분별한 역고소를 부추기는 일이 변호사 윤리에 어긋남을 인식하기 바란다. 진실은 가려져야 하지만,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행태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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