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 보편화시대의 대학

2020.02.11 20:36 입력 2020.02.11 20:55 수정

인류의 문명은 지식공유를 통해 성장해왔다. 지식은 나눌수록 퍼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사회는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지식은 최근 기승을 부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닮았다. 둘 다 격리되는 순간 소멸이 시작된다. 다만 바이러스는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위협하지만 지식은 퍼져나갈수록 인류를 풍요롭게 한다.

[정동칼럼]고등교육 보편화시대의 대학

학교체계는 지식공유를 위해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대학은 그런 지식공유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 놓여 있다. OECD 교육통계를 보면 주요 국가들의 25~64세 인구 평균 고등교육 이수율은 이미 50%에 근접하거나 넘어서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고등교육 보편화시대”에 살고 있다.

보편화시대 대학의 사명은 대학이 보유한 고급 지식을 보다 넓게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고민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쟁과 사회선발, 학위와 졸업장 중심의 대학과는 다른 모형이 필요하다. 지식을 개방하고 연결하며 융합하고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전파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이런 지식공유의 필요성은 평생학습과 계속교육의 차원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난다. 산업 4.0시대에는 더 이상 학부교육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문과 출신들이 공학을 다시 공부한다든지 구조조정되는 인력들이 다른 영역으로 전환하는 등의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현재 대학 구조는 이런 변화를 받아내기 어렵다. 또한 대학원은 비싸기도 할뿐더러 대부분 학위를 위해 무늬로만 존재할 뿐이다. 재직자들이 다시 빅데이터교육이나 생명과학교육을 받고 싶지만 대학 문을 다시 두드리기에는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다고 유튜브에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9년 우리나라 평생학습 참여율은 역대 최고치인 43%를 기록했지만, 그 가운데 형식교육(학력 혹은 학위과정)에 참여하는 비율은 1%에 머물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고졸 이상의 학력을 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말은 곧 평생학습에 대학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형식교육 비중이 10%를 넘는 덴마크, 영국, 핀란드 등에 비해 적어도 너무 적다.

우리나라 대학의 계속교육 혹은 재교육 기능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는 대학이 너무 학위과정, 전일제학생, 청년층교육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일반 재직자교육, 비학위과정, 시간제등록 등은 정규과정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이제 대학의 ‘학점’과 ‘강좌’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위과정을 넘어 비학위과정에 대한 전향적 관점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학위과정 중심의 대학체계는 지식공유를 촉진하기보다 오히려 제한한다. 사회 계층사다리일지는 모르지만 지식공유에 유리한 방식은 아니다. 예컨대 서울대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은 소수 엘리트 학생들만의 독점물일 수 없다. 국민 누구나 그 지식에 접근하고 학습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대학의 사회적 책무이다. 학위와 상관없이 새로운 차원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비학위과정 모형을 창조할 수 있다.

최근 고등교육에서의 일련의 변화들, 예컨대 평생교육체제지원사업(LiFE), 대중온라인개방강좌(MOOCs), 대안대학의 등장 등은 이런 흐름을 반영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학의 정규과정을 전일제 학생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는 고전적 기본전제를 그대로 묵인하는 한계를 가진다. 그 뒤에는 여전히 대학=학위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한다.

정규강좌를 대중에 개방하고 학점을 줄 수 있으며, 외국에는 그런 경우가 많다. 학위과정이 아닐 뿐 강좌를 공유할 수 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지식공유이다. 그 학점의 누적을 통해 단기실용자격과정들을 만들 수 있다. 미국 대학들의 입학처 홈페이지에 가면 학부, 대학원과 더불어 성인계속교육 입학 항목이 있다. 정규학생과 비정규학생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현재 우리 고등교육법은 학점을 곧 학위과정의 전유물로 전제하며, 공개강좌는 학점을 부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일반인 대상의 공개강좌는 정규강좌와 별도로 개설하며, 학점은행제로 따로 묶는다. 시간제 학생의 숫자를 비현실적으로 제한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시장에서 가치있는 지식들은 학위과정에 있는 학생들의 전유물이 되고, 그 외곽에 있는 사람들은 맛보기 버전만 들을 수 있는 차별이 나타난다. 지식 불평등이 대학과 학위제도를 중심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학과 학점에 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지식공유를 위해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이 만나는 접점을 재설계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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