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없는 한국 정당의 표류

2020.02.04 20:35 입력 2020.02.04 20:36 수정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정당들의 이합집산과 인재 영입 노력이 한창이다. 이런 노력은 이번만의 일이 아니라 한국 정당들이 선거를 목전에 두고 늘 해왔던 일상화된 일들이다. 왜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정동칼럼]뿌리 없는 한국 정당의 표류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을 무시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평상시에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라 일컬을 정도로 일반 국민을 위한 일을 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되면 유난히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세우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 선거법 개정 패턴을 보면 거의 선거 직전에 이루어진 사례가 많다. 국민들에게 한 일이 없으니 거의 비현실적인 선거법 개정으로 자신들의 죄의식을 회피하려는 의식에 불과했다. 정당 간 이합집산도 염치 없는 행동이다. 해방 이후 정당 이름만 100여개에 달하고 이합집산도 300여회에 이른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선거 때만 되면 내용도 없는 정치공학의 게임을 시도해 왔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집단에 표를 던져야 하는 국민들의 실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또 인재 영입은 어떤가? 젊은 세대 영입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하필 선거 때만 되면 수선을 떠는 것이 문제다.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를 실시한 지가 20여년이나 되었지만 지방에서 주민들을 위해 숨어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중앙에 진출한 경우는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정치에 뜻이 있는 젊은이라면 왜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지역 봉사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지방에서 정치와 행정을 경험한 사람들이 현장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지방자치는 오히려 중앙정치그룹과 지방정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 식으로 발전해 왔다. 정치는 전문성으로만 되지 않는다. 현장감이 있고 사람을 이해하고 균형 감각이 있어야 한다.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이런 덕목을 갖추었다는 보장은 없다.

선거가 임박하여 정당들이 보이는 이런 호들갑의 이면에는 한국의 정당들이 일상적으로 국민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실상이 있다. 수년 전 미국 민주당의 코커스(선거구 단위 당원모임) 현장을 참관한 일이 있다. 동네 교회의 넓은 교회당에 일반 주민들이 삼삼오오 그룹으로 나뉘어 각종 정책을 토론하고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이 평화스러운 정치행사를 보면서 정당이 풀뿌리와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의 정당은 지금까지 거의 거저 먹는 정치를 해왔다. 보수집단은 산업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든 지역주의에 기생하여 오랫동안 정당의 사회적 연계를 차단해 왔다. 산업화가 야기한 한국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없이 산업화로 이득을 본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은 것이다. 이런 집단들이 국회 의제를 독점하고 지역주의에 기반하지 않은 몇몇 국회의원들의 행동을 크게 제약했다. 쉽게 잡은 권력의 기반은 외환위기와 세계화 및 디지털 시대를 거치면서 근본적으로 흔들렸는데도 보수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옛날 방식을 고수하다 철저한 패배를 맛보았다. 보수는 이런 과거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없이 마치 엄격한 후보자 선정이 이를 가름하는 것처럼 이미지 정치를 하고 있다.

소위 진보진영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다. 1980년대 민주화가 되면서 진보진영은 진실게임에 부딪혔다. 노동자, 더 넓게는 민중과 연계돼 있다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의 주장과 달리 실제로는 상부 정치 엘리트들과의 연계에 더 의존해 있었다. 따라서 민주화 이후 권력에 접근하는 선거에서 지역세력에 기반한 기성정치인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면엔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상정했던 진보진영의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현실에서는 철저히 부정된 배경이 있다. 보수가 지역에 기반한 결과 진보도 크게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유사지역주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사회세력과 연계되지 않은 채 이미 모두 낡은 정당이 되어 개편이 불가피하다. 득표에 혈안이 된 정당들의 행태를 볼 때 선거 이후 한국 정치의 혼란상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 사회는 밖으로는 취약한 경제적 기반과 급변하는 국제정세하에서 생존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는 극단적인 정책적 차이를 허용할 만한 정치적 공간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안으로는 기존 사회갈등 단위인 계급, 세대로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되어 있다.

새로운 선거법이 불완전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다가오는 총선은 한국 사회의 다양성이 최대한 반영되는 정당 구조 개편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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