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성추행 사이

2006.03.06 17:59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지만 진보파가 노선투쟁만 즐겨하는 건 아니다. 좌우정당체제가 확립된 서유럽의 경우 좌파는 우파에 비해 섹스 스캔들도 더 빈번하게 일으키곤 한다. 물론 돈과 관련된 추문에서는 우파가 비교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굳이 문자를 쓰자면 ‘좌색우금(左色右金)’ 정도가 될까.

독일 중도좌파정당인 사민당의 경우 ‘동방정책의 아버지’ 빌리 브란트 전 총리는 만년에 손녀뻘 되는 여비서와 ‘부적절한 관계’ 끝에 네번째 결혼했다. 브란트의 ‘정치적 아들’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20세 연하의 출입기자와 열애에 빠져 이념적 동지인 세번째 아내와 헤어졌다. 미모의 그 여기자는 우파 기민당의 20년 집권을 저지한 슈뢰더와 결혼해 퍼스트 레이디가 됐다. 녹색당의 중심인물인 요쉬카 피셔 전 외무장관은 자유분방한 여성편력으로 역시 네번이나 결혼했다. 반면 헬무트 콜 전 총리 등 거물 우파 정치인들은 배우자와 백년해로를 했거나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좌파 사회당의 프랑수와 미테랑 전 대통령은 어느 여성과 혼외정사로 딸까지 낳았으며, 재임기간 중 그 모녀를 은밀히 관저에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좌색’에 대한 논거를 제시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다만 연대를 우선시하는 좌파들이 이성(異性)까지 연대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반면 기존의 전통과 제도를 중시하는 우파들은 일부일처제를 수호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서유럽 정치인들의 ‘좌색우금’-

그렇다면 ‘좌색론’은 대한민국에도 해당될까. 먼저 좌파정당이랄 수 있는 민주노동당에 자주파(NL)와 평등파(PD)라는 두 정파간의 대립이 있긴 하지만 이 당 사람들이 색을 밝힌다는 말은 과문한 탓인지 아직 듣지 못했다. 오히려 이 땅에서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우색(右色)’의 징후가 더 뚜렷하다는 느낌이 든다. 보수우파 정당이랄 수 있는 한나라당의 경우 최근 최연희 전 사무총장의 여기자 성추행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심심하면 한번씩 핑크빛 색깔이 번지곤 했다. 정모 의원은 수년전 최의원과 비슷한 상황에서 여기자를 성추행했고, 주모 의원과 임모 의원은 각각 술집 여주인과 국회의장 여비서에게 욕설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서유럽의 ‘좌색’과 한국의 ‘우색’은 남성과 여성이 등장한다는 기계적 평면적 설정만 동일할 뿐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차이는 연애와 성추행 사이의 도저히 메워질 수 없는 간극에서 비롯된다. 연애는 한 사람과 또다른 한 사람 사이의 1대 1 평등한 인간관계에서 진행되는 육체적 정서적 긴장의 교호(交互)작용이다. 반면 성추행이나 성폭언은 사회경제적 물리적 강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서구 좌파정치인들의 ‘정륜(正倫)’ 아닌 불륜의 연애가 윤리도덕적 논란거리라면 한국 우파 정치인들의 성적 추행과 폭언은 형사상 범죄인 것이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뿌리깊은 성추행 성희롱 등의 악폐를 해소하고 인간존중의 사회를 만드는 획기적인 방안이 내게 있을 리 없다. 다만 어려서부터 남성과 여성,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차별을 혁파하고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교육한다면 상당히 개선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성추행 성폭언으로 물의를 빚은 한나라당이 남아선호와 남녀차별 의식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는 영남지방을 정치적 토대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성추행은 약자에 가하는 폭력-

또다른 방안은 연애를 적극 장려하는 것이다. 얼마전 극우냉전파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한나라당의 정모 의원은 심야 호텔방에서 어느 여성과 ‘묵주 모임’을 가진 뒤 대북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등 눈부신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나는 정의원이 그 여성과 종교적인 교감뿐만 아니라 이성으로서의 정서적 교감, 즉 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한 여성을, 한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그의 마음이 북녘동포를 배려하는 관대함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까. 비록 부적절한 연애라 할지라도 성추행보다는 훨씬 낫겠다.

〈손동우/논설위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