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내것 내맘대로’

2006.03.13 17:52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는 고인이 된 한 재계 원로가, 친인척 소유로 계열분리된 회사 근처를 우연히 지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갑자기 차를 세우게 한 뒤 예정에 없이 그 회사 건물 안으로 밀치고 들어갔다. 당시 건강이 극도로 좋지 않은 데다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인데도 거의 관성처럼 움직였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것은 수행 비서. 비서는 엘리베이터에까지 오른 그 원로에게 “지금은 우리 회사가 아닙니다”라며 만류했지만, “이건 내 거야”라는 싸늘한 독백을 들어야 했다.

간난신고의 세월 속에 침탈당한 경험이 많아서일까, 우리에게는 자기 것에 대한 집착이 유달리 강한 것 같다. 부모들은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하기보다는 자신의 소유물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하다. 부모들이 자녀의 인생 행로를 결정하고, 비관 자살하는 자리에는 예사로 자식까지 동행시킨다. 고부(姑婦) 갈등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었는지 요즘에는 장모와 사위간 갈등이 만만치 않다는데, 그것도 따지고 보면 자녀들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우리들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어디 그뿐이랴. 사학법 개정에 반발하는 사학들의 근저에는 ‘사학은 내 것’이라는 뿌리깊은 소유의식이 개입돼 있기 십상이다.

- 자녀에 무리한 승계 편법 불러 -

칼 아이칸의 KT&G 인수·합병(M&A) 문제로 온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재계는 M&A에 대한 대응수단이 없기 때문이라며 연일 대책 마련을 외치고 있고, 여론도 썩 이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 국제 투기 펀드들이 별 수고도 들이지 않고 거액을 챙겨가는 데 따른 경계심이 그만큼 더 커진 증거이리라.

경영권 방어장치가 더 필요하지 않다는 측은 자유로운 M&A가 경영의 투명성·효율성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집중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M&A가 무한정 허용되면 이같은 장점 못지 않게 부작용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로서는 항상적인 경영활동에 방해되는 장애물과 항시 대면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투기 자본은 흔히 무리한 구조조정, 고율의 배당, 투자 축소 등을 요구하면서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 주장에 흔들리게 되면 기업들은 장기적인 사업 구상이라든지 미래 가치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도 아니라면 안정적인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 갖은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것은 결국 기업 체력의 약화, 성장 잠재력의 고갈로 이어진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의 폐해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경영권 방어장치를 강구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선행돼야 할 것, 적어도 동시에 추진해야 할 것이 있다. 오너들이 기업은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천민적 속성을 버리는 일이다. 그러려면 능력이 있든 없든 경영권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것부터 씻어내야 한다. 근래 삼성의 사례에서 보듯 무리한 상속 시도는 편법과 불법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이같은 편법과 불법이 판을 치지 못하도록 제도와 규범을 정비하는 것 또한 긴요한 과제이다.

- ‘경영권 방어장치’도 실효 의문 -

기업들 사이에 ‘내 것은 내 마음대로’라는 천민적인 집단의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경영권 방어장치가 이를 엄호해준다면, 기업 존망에는 더욱 위해할 뿐이다. 단지 자식이라는 이유로 능력과 상관없이 경영권을 물려주었을 때 그 결과가 어떤지는 짧지 않은 우리 기업사에서 종종 경험했던 바이다. 경영을 잘못하면 경영권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자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무조건적인 경영권 보호장치는 이러한 위기감마저 무장해제시킬 수 있다.

혹자는 차등의결권주 등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경영권 보호 제도를 거론하지만, 그들은 우리와 문화가 다르다. 그들 나라에서는 경영자의 자질이 없으면 아들이라도 대개는 자동 승계를 꿈도 꾸지 못한다. 우리 문제를 거기에 비교할 일이 아니다.

〈박노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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