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녀가 태어날 확률

2015.03.23 20:45 입력 2015.03.23 21:02 수정
신동호 논설위원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기적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 상상을 초월하는 단위의 우주적 확률을 충족한 결과다. ‘내가 세상에 태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러 계산법을 종합해서 정리하자면 (우주가 생성될 확률)×(지구가 생성될 확률)×(생명체가 발생할 확률)×(인간이 생겨날 확률)×(나의 부모가 태어날 확률)×(나의 부모가 만나게 될 확률)×(나를 구성하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의 값 정도가 될 듯하다.

[경향의 눈]내 자녀가 태어날 확률

하나하나 계산이 간단치 않다. ‘나의 부모가 태어날 확률’만도 그렇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태어나서 만나 아버지를 낳을 확률에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태어나서 만나 어머니를 낳을 확률이 반영돼야 한다. 할아버지·할머니·외할아버지·외할머니가 태어날 확률을 구하기 위해서는 또 그들의 부모가 태어나서 만나 그들을 낳을 확률을 각각 알아야 하고, 그런 식으로 인간이 처음 발생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수많은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 단 하나의 조건이라도 어긋나면 나는 태어날 수 없게 된다.

지난 주말 어느 결혼식에 갔다가 엉뚱하게 이런 생각을 했다. 여느 결혼식이라면 흘려들었을 주례사에 강하게 이끌리면서다. 요즘 시골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마을의 경사이고 그 아이는 공동체 전체의 손자·손녀가 된다고 한다. 주례는 새로 탄생하는 신랑·신부에게 자신과 공동체에 멋진 선물이 될 아이를 낳고 하객에게는 그 아이를 공동체의 새로운 일원으로서 친부모, 친조부모처럼 보살피고 사랑하기를 당부했다.

흔히 있을 법한 주례사가 새삼스럽게 들렸던 것은 최근 통계청이 잇달아 내놓은 각종 사회지표와도 관련이 있어서다. 지난 19일 발표한 ‘2014년 한국의 사회지표’는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우울한 미래상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빠르게 늙어가는 모습이 그랬다. 1990년 27세였던 중위연령은 지난해 40세를 넘어섰고 2040년에는 52.6세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1990년 5.1%이던 노인인구는 지난해 12.7%를 기록했고 2040년에는 32.3%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아무리 인구 고령화가 세계적 추세라고 하지만 놀라운 진행 속도라고 할 만하다.

생산 활력은 떨어지고 부양 부담은 늘어나는 사회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지난해 17.3명에서 2040년에는 무려 57.2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나는 상황은 아직 제대로 실감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고령화는 평균수명은 증가하는데 출산율은 감소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 기대수명은 1990년 71.3년에서 2013년 81.9년으로 10년 이상 늘어났다. 반면 출산의 관문인 혼인건수는 1990년 39만9000건에서 2013년 32만3000건으로 줄었다. 초혼 연령도 남자 32.2세, 여자 29.6세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고령화 대책은 출산율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평균수명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혼인율부터 살피는 게 먼저일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요즘 젊은이는 결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결혼의 전제가 되는 일자리와 주거비용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혼불능세대’니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 불린 지는 이미 오래다. 요즘은 삼포세대가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 거기에 취업과 희망까지 접은 ‘칠포세대’ 등으로 무한진화를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2월 고용동향’은 이들의 딱한 처지를 다시 확인해주었다. 지난 2월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11.1%를 기록한 것이다. 앞에 말한 주례사는 이런 암울한 세태를 헤치고 결혼에 골인한 한국의 모든 신랑·신부들에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고마운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었다.

이제 우주적 확률로 태어난 우리가 자녀를 낳을 확률을 계산할 차례다. 그것은 좀 더 복잡할 것 같다. 중요한 변수가 새롭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결혼과 출산이 개인적 문제만이 아니라 국가적 문제로 번진 것이다. 저출산 정책을 출산·보육 지원에서 결혼 지원으로까지 확장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포럼이 제안하는 ‘신혼부부지원특별법’ 등이 그런 예다. 그럼 계산해보자. (내가 태어날 확률)×(내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마음을 되돌릴 확률)×(배우자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마음을 되돌릴 확률)×(두 사람이 만나 결혼할 확률)×(각종 국가적·사회적 지원책), 삼포세대의 자녀가 세상에 태어날 확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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