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부터 ‘사회적 독점’ 깨자

2008.02.01 17:45
조희연 / 성공회대민주·사회硏 소장

[시론]로스쿨부터 ‘사회적 독점’ 깨자

로스쿨 예비인가 대학 잠정안이 공개됐다. 수년간 전국의 모든 대학이, 그리고 법대에 속한 모든 교수들과 동문들이 로스쿨이라는 ‘독점’적 범주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했다. 결과는 세칭 SKY 대학들과 일부 지방 국립대학들이 선정되었다. 서울과 지방의 일부 중하위권 대학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세칭 일류대학들 배제했어야

선정 결과를 보면서 나는 ‘전혀 다른 선정’을 발칙하게 상상해보았다. 예컨대 학벌 질서를 완화하고 대학의 특성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세칭 일류 대학들을 빼고 서울과 지방의 중하위권 대학을 선정하는 등이다. 그러면 아마도 현재의 학벌질서에도 균열이 오고 법학 교육에 관한 한 SKY 대학에 비해 비SKY 대학이 꿀리지 않는 상황이 올 것이며 일부나마 대학 간 특성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서 서울대, 연·고대와 지방 국립대에서 예컨대 전남대, 부산대가 로스쿨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혁명보다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로스쿨 배정은 어느 학교 출신이 법조인이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서울대 출신이 법조인이 되나 숭실대 출신이 되나 조선대 출신이 되나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더구나 현재와 같이 모두가 안정적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올인하는 상황에서 로스쿨이 학벌 질서상 낮은 대학에 있더라도 우수한 인재가 몰리게 되어 있다.

요즘 나는 동료들과 함께 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 한국의 포함하여 - 아시아의 많은 나라 사례를 비교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화의 핵심을 독점의 해체 여부로 설정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독재라고 하는 것은 군부 출신 독재자가 장기집권하는 체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의 정치·경제·사회적 독점이 결합되어 있는 체제이다. 그런 점에서 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성취해가는 것은, 단순히 선거와 같은 정치적 경쟁을 부활시키고 절차적 합리성을 제고하며 투명성을 높이는 것만은 아니다. 실제적으로 정치적 탈독점화, 경제적 탈독점화, 사회적 탈독점화가 얼마나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사회적 독점이라는 것이 생소한데, 세칭 일류대들이 교육영역에서 패권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학벌질서도 그 예가 될 것이다. 일류대에 가는 것은, 단순히 교육 성취의 수월성에 주어지는 정당한 보상이기보다는, 그 자체가 평생을 따라다니는 특권의 자격증이자 특권적 네트워크의 가입증명서가 되어 있다.

민주화의 핵심은 ‘독점 해체’

나는 민주화의 과정에서 정치, 경제권력의 독점이 완화되는 것을 넘어서서, 이러한 사회적 독점이 얼마나 해체되는가하는 것이 민주화의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의 도정에 있는 국가는 이러한 탈독점화를 촉진하는 방향에서 공공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로스쿨 배정뿐만 아니라 독점적 지위를 배분하는 다양한 정책영역에서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평등의 정신에 비추어 국가가 사회적 독점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로스쿨 선정은 기존 고시 합격 비율, 시설 투자, 교수 수 등 ‘현존 물량’ 기준을 주된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졌고 그것은 정확히 현재의 학벌 재생산구조에 부응한다.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 제한되지만 - 평등의 정신을 급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여러 독점들이 폭넓게 해체되고 ,그리하여 더욱더 평등한 사회에 살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말자. 민주주의, 특히 급진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의 프로젝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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