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담화 문제, 동아시아가 공유해야

2014.06.25 20:54
신주백 | 연세대 HK연구교수

한·일 간 역사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지난 20일 아베 정권이 일본 중의원에 제출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간 교섭의 경위’라는 보고서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에 관여했다고 인정한 고노담화가 양국 정부 사이에 문안을 조정한 결과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시론]고노담화 문제, 동아시아가 공유해야

보고서에 따르면 고노담화의 초안에는 ‘군 당국의 의향’에 따라 위안소가 설치되었다. 이후 ‘지시’(한)’→‘요망’(일)→‘지도’(한)라는 표현이 한·일 간에 제안되었다. 결국 고노담화에는 일본군의 ‘요청’에 따라 위안소가 설치 운영되었고, 일본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위안부’를 모집한 것으로 언급되었다. 외교 현안을 당사국끼리 협의하는 일은 당연한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는 정치적 타협의 결과처럼 취급한 것이다.

고노담화는 한일기본조약처럼 당사국 모두가 사인해야만 효력이 발생하는 협정이 아니다. 담화의 최종적 마무리는 주권국가 일본의 몫이다. 그래서 일본정부도 한국정부에서 가장 역점을 둔 강제성에 관해 한국 측의 표현을 거부했다. 동원과정의 강제에 초점을 맞춘 협의의 강제성만을 인정한 채, 담화에서 “총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고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보고서는 아베 정권 스스로 밝힌 대로 ‘검토’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일본 측 초안에 나오는 ‘의향’의 근거는 무엇인지, 한국 측이 제안한 ‘지시’ ‘지도’는 부당한 요구였는지에 대한 검토 의견이 없다. 오로지 담화를 작성하고 아시아여성기금의 사업을 실시한 경위에 대한 의견만 있다. 5명의 검토위원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전문적인 검증 능력을 가진 사람은 우익 성향의 연구자 한명뿐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보고서의 검토 방향은 고노담화의 부정이기보다 훼손이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침략성을 부인하려는 아베 정권의 발상은 애초 담화의 부정에 방점이 있었겠지만, 여러 정황이 그것을 막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헌법을 개정하지 못하고 해석헌법이란 변칙을 동원한 것처럼.

그렇다고 ‘훼손’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이는 1982년 일본정부 스스로 국제사회에 약속한 ‘근린제국조항’의 운명을 보면 시사받을 수 있다.

교과서 개선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의 우익과 일부 보수세력은 1990년대 중반경부터 자학사관이란 이름으로 교과서를 공격했다. 21세기 들어 이 조항이 교과서 검정 때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나타나더니 지금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정부가 이 조항을 폐지했다고 공식 발표한 적도 없다. 야금야금 훼손하는 과정에서 사(死)문서화한 것이다. 일본에서 우경화 분위기를 선도한 이슈가 역사교과서 문제였고, 그 결과의 하나가 아베 정권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훼손’은 ‘부정’의 출발인 것이다.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조차 일본군 ‘위안부’가 “충격적인 방식으로 성폭행당”한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였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아베 정권은 그 진실을 정면으로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한 고노담화가 있는 한 일본 외교의 아킬레스건인 ‘위안부’ 문제에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고 보았을 것이다. 또한 핵심 지지 세력을 계속 확보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평화헌법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기반을 둔 일본의 전후체제를 재편하려는 아베 총리와 같은 사람들로서는 고노담화, 무라야마담화는 큰 장벽이다. 담화는 일본의 전쟁책임, 식민지 지배책임을 인정한 문헌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베 정권으로서는 고노담화를 훼손함으로써 침략을 부정하고 지배를 정당화할 공격 논리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고노담화의 본질을 놓쳐서는 안된다. 고노담화는 개인 담화가 아니라 일본정부의 담화이다. 고노담화를 한·일관계에 가두지 말고 동아시아로 확장해야 한다. 고노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식민지 지배책임을 인정한 담화이다. 고노담화는 식민지 지배책임을 배제한 한일기본조약과도 모순되는 담화이다.

안보와 역사를 분리하는 전략으로 정체성을 놓쳐서는 안된다. 대한민국 외교의 전제이자 출발선인 남북화해로부터 안보와 역사를 병렬적으로 풀어갈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반일담론을 넘어 한·일과 동아시아가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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