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부패 없는 나라로 가는 길

2015.01.11 20:23 입력 2015.01.11 21:43 수정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부정부패는 국가 경제질서를 왜곡시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의 하나다. 공직부패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경제적인 손실도 야기한다. 부패인식지수가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되면 그만큼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국민소득, 외국인투자, 세입 등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 나라의 경제수준과 부패인식지수 간에는 비례관계에 있지만 우리나라만 예외다.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이고 OECD 국가인데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는 십수년 전(2001년 세계 42위)이나 지금(2010년 세계 39위)이나 큰 변화 없이 경제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시론]김영란법, 부패 없는 나라로 가는 길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부패 정도는 더 심각하다. 최근에는 감사원, 금융감독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소위 사정기관들의 부패 연루사태로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이 구속되거나 기소되는 상황에 이르러 가히 부패공화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우리 사회의 공공부문 부패를 근절하고 반부패 청렴문화 조성을 위한 국가적 반부패시스템을 구축할 부패방지법이 제정(2001년 7월24일)된 지 13년이나 지났다. 부패방지 전담기구로서 부패방지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에 이어 현재는 국민권익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면서 법적·제도적 반부패 인프라는 갖추어졌다. 뇌물죄에 대해서는 형법 및 특별법에 처벌규정이 완비되어 있다.

그러나 왜 공직부패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부패방지제도와 뇌물죄 처벌규정은 비교적 촘촘한 그물망처럼 돼 있는데, 실제 수사와 기소, 징계와 처벌은 솜방망이처럼 무르기 때문이다. 또한 뇌물죄의 구성요건 해석·적용이 엄격하여 뇌물죄 성립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뇌물 개념의 핵심 요소인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엄격하게 요구하면 뇌물죄 성립이 어려워진다. 공무원이 금품을 수수할 때 대가관계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수수한 이익이 법률상 뇌물에 해당하는지(특히 직무관련성이나 대가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법정공방이 오가게 되면 재판부가 유죄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수뢰자가 증뢰자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그 돈을 뇌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라고 주장하면 뇌물성이 부정될 수 있다. 금품수수가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들이 대가관계를 부인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에 직무에 대한 대가성을 입증하여 처벌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이다. 뇌물죄의 무죄율이 다른 범죄에 비해서 높은 이유다. 그래서 대가성의 입증이 뇌물죄 성립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뇌물죄 성립에서 반드시 대가관계를 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바로 본 법안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다. 공직자 본인이 동일인으로부터 한 번에 100만원(연간 기준 300만원)이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그 명목이 무엇이든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형사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법안의 핵심 내용이다.

이 법률이 제정·시행되면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며 부정한 금품을 수수한 것이 분명한 공직자들을 처벌하지 못해온 관행과 현실을 바꿀 수 있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일이 터지고 나서야 돈을 건네는 식의 뇌물 주고받기는 없다. 평소 향응을 베풀고 떡값을 주고 골프 접대를 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맺어 놓으면 일이 터질 때를 대비한 보험처럼 청탁을 하지 않아도 일이 잘 처리되게 하는 접대문화로 바뀐 지 오래다. 이런 접대와 청탁문화는 뇌물개념의 요소인 ‘직무와 관련한 대가’를 고집하면 처벌할 수 없다. 이러한 변화된 금품수수 형태에 대한 맞춤형 처벌 법안이 바로 ‘김영란법’이다.

처벌 대상이 공직자 외에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종사자까지 확대되어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실효성 있는 법률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원안의 핵심 내용 중 이해충돌 방지 부분이 제외된 점 등 몇 가지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김영란법’은 공직사회의 부정·비리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강력한 개혁 법안이다. 이로써 뇌물죄 처벌을 위한 촘촘한 그물망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부패청정공화국으로 나가려면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국회 입법의 첫 관문을 통과한 이상 이번 기회에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