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흙탕물에 흐려진 ‘4대강 진실’

2015.01.08 20:56 입력 2015.01.09 14:05 수정
박창근 | 가톨릭관동대 교수·토목공학

한반도 대운하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시점이 17대 대통령 선거 1년 전인 2006년이었음을 기억한다. 그해 10월24일 이명박 후보는 독일 라인-마인-도나우(RMD) 운하를 방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는 기술적 검토가 끝났으며 시작 후 4년 이내에 완공이 가능하고, 또한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통해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루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것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게 필자에 그치는 게 아니라면 그만큼 MB의 운하 집착은 집요했음을 말해준다. 그 허구성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가 되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시론]정치 흙탕물에 흐려진 ‘4대강 진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은 그 목적도 잘못됐고 설계와 시공도 부실하고, 유지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또 지난 연말(12월23일)에는 국무총리실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가 그동안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초 계획보다 8개월이나 앞당겨졌다는 점이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최종보고서 초안(비공개)에 따르면 확보한 물은 당초 계획의 10분의 1에 그쳤을뿐더러 그나마도 사용계획이 없고, 4대강에 설치한 보는 오히려 홍수위험을 증가시키고 보 건설 위치를 선정하는 기준도 절차도 없었다. 더구나 ‘녹조라떼’라는 신조어를 만들 만큼 수질을 악화시킨 원인이 주로 보(洑) 때문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즉 4대강 사업은 물 확보, 홍수예방, 수질개선이라는 당초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역행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부작용은 보의 안전성 문제다. 9개 보에 대한 수중조사 결과 6개 보에서 파이핑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최종 발표에서는 ‘누수·용출 현상’이라고 표현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파이핑 현상이 지속되면 기초 지반의 흙이 점차 유실되어 보 기초 지반에 공동이 발생하고 궁극적으로는 보 구조물이 침하되면서 파괴에 이르게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2013년 감사원에서도 이미 확인했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지속적으로 파이핑 현상이 발생한다고 주장했지만, 국무총리실은 최종 발표 자료에서 파이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파이핑 현상을 조사하는 비용을 국토부가 제공했고 국토부 공무원이 국무총리실에 파견되어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국토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총리실 조사·평가위는 ‘4대강 사업은 일정한 성과가 있었고 부작용은 우려한 수준이 아니다’라는 지극히 정치적 판단을 했다.

4대강 사업은 생태적 측면에서는 ‘총체적 부실’이라는 평가를 한 위원도 있지만, 4대강 사업에 대해 찬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립인사라고 자평한 대다수 위원들은 제대로 ‘국토부 2중대 노릇’을 한 셈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했던 세력에 면죄부를 주려고 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곡학아세하는 전문가들을 정화할 수 있는 기초적인 동력이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사회적 전환기에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침묵”이라고 지적한 바 있지만, ‘선한 사람’은 액면 그대로 ‘착한 사람’이 아니고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 전문가’이다. 그런 전문가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주류이고 그들만의 ‘신기루’를 만들고 있다. 불행하지만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앞으로 극복해야 할 쉽지 않은 과제이다.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가재정법 등을 위반하면서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뒤로 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인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대국민 사기극을 충실히 수행한 대가로 훈·포장을 받고 진급하고 더 힘 있는 자리로 영전했다. “전광석화와 같이 착수하고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여야 한다.” 2008년 12월 당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이다. 지난 1일 MB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불편해하면서 아직도 자화자찬하는 모습이 한심하다. ‘사자방’을 외치면서 4대강 국정조사도 끌어내지 못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계를 절감한다.

<박창근 | 관동대 교수·토목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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