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

2015.01.16 20:43 입력 2015.01.16 20:56 수정
윤명오 |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교수·전 한국화재소방학회 회장

128명의 사상자를 낸 의정부 소재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를 비롯해 남양주 아파트 화재 등 연이어 발생한 도시 공동주택 화재로 시민들의 불안이 높다. 주택의 가장 본질적 기능은 ‘셸터(Shelter)’로서의 안전보호기능이다. 예쁘고 편리한 집도 좋지만, 삶을 영위할 힘을 재충전하는 보금자리로서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거주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그 밖의 다른 생활기능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론]화재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들

화재 대책에는 신속성과 기술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사람들이 1000도의 고열이나 고농도의 가스오염으로부터 보호받는 환경이 확보되어야 함과 동시에 인명구조와 구급활동이 골든타임 이내에 이루어져야 하다 보니 가장 가혹한 상황에 대비한 공학적인 그리고 소방활동적인 측면의 철저한 준비와 시행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화재 대책은 수단과 절차가 복잡하고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하지만, 모든 화재 대책의 공통 기본 원칙은 두 가지이다. 첫째, 확실한 대피통로를 마련하는 것. 둘째, 화재의 소화 등을 통해 불의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원칙 중 ‘확산 차단’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다. 건축물을 아무리 불연화시킨다 해도 이불이나 침대 등의 내부 생활용품은 규제할 방도가 없다. 또한 최근 꾸준히 스프링클러의 의무화 범위를 넓혀온 것은 화재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으나 스프링클러가 의무화되기 전에 당시의 법규대로 스프링클러 없이 준공된 건물이 상당수이다 보니 해당 노후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소화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초에 준공된 20층 높이의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는 2008년 화재를 겪고 나서야 스프링클러를 시설했다. 해를 거듭하며 의무대상이 확대되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경제적 여건을 무시한 ‘안전지상주의’식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 보니 건물의 준공시기에 따라 연소성의 차이가 큰 건물들이 혼재되어 있다. 지금 소방이나 건축법규를 강화한다 해도 그 대상은 전체 건물 중 극히 일부인 신축 건물만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효과도 미미할 것이다.

한편 두 가지 원칙 중 ‘확실한 대피통로의 마련’은 실현가능하다. 스프링클러가 없던 85년 전에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준공이 승인된 것은 대피통로의 확실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에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에서는 발화와 동시에 대피통로가 굴뚝으로 변했다. ‘생명통로’가 되었어야 할 대피통로가 전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화재로 163명이 사망했다. 그 중 38명은 대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사람들이었다.

정부가 도시형 생활주택에 대한 화재 안전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민안전처와 국토부, 전문가가 숙의해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규제 신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존 건물의 안전도 향상이다. 기존 건물에 설치되어 있는 드라이비트를 모두 교체하거나, 지금 사용 중인 건물의 피난통로를 확인 및 점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모든 층에서의 탈출로 확보를 위해 외부 비상계단이나 피난 사다리 설치를 도모해야 한다. 또한 지하주차장 및 필로티 등에 접하는 피난로에 차량의 화염이 침투되지 않도록 조치하여야 한다.

화재 발생이나 확산에 불리한 기존 건물의 거주민을 화재로부터 보호하는 길은 ‘피난로’를 확보하는 것이며 ‘피난통로’에 관한 원칙은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바뀌지 않았다. 현재 건물화재 대책의 지상 목표는 화재 시 피난의 안전성 보장이다. 언제 달아놓았는지, 어떻게 쓰는지조차 모르는 완강기나 피난 밧줄, 공기안전매트 등 무수한 설치물들이 실제 상황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 어떻게든 믿을 수 있는 생명통로, 즉 대피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이번 의정부 화재에 대한 ‘문제의식’의 출발점이자 현장 재난행정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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