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대책’의 불편한 진실

2015.01.26 20:42 입력 2015.01.26 20:51 수정
정재훈 |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어린이집 수가 급격히 증가한 지난 10여년 사이 2~3년 주기로 반복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대책 또한 판박이처럼 반복되는 모양새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들이 지금까지 나왔는가? 대책의 큰 흐름은 두 가지이다. 첫째 학대 발생 원인을 개별 어린이집에서 찾는 흐름이다. 둘째 비정상적 보육환경을 만드는 사회구조에서 찾는 흐름이다. 전자는 감시와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적 경향을, 후자는 구조 변화와 보상 중심의 사회정책적 경향을 보인다.

[시론]‘어린이집 대책’의 불편한 진실

보육교사와 원장 등의 개인적 일탈로서 학대를 보는 형사정책적 경향은 처벌과 인성 교육 강화, 그리고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한 감시 확대를 대책의 주 내용으로 제시한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가 본격적 사회이슈가 된 2010년 이명박 정권의 보건복지부 대책이 이 관점을 잘 보여준다. CCTV 설치 유도, 학대자 영구 퇴출, 관련 종사자 자격증 취득 조건 강화와 인식 개선 교육 등이 주 내용이다.

보육교사 처우와 근무 환경 개선은 중요한 대책이 아니었다. 임기 내내 복지축소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던 이명박 정권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반면 집권 초반기 박근혜 정권의 보건복지부는 비정상적 보육환경 개선을 추구하는 사회정책적 경향을 대책에 반영하였다. 2013년 5월 또다시 불거진 어린이집 아동학대 문제 해결을 위한 보건복지부 대책은 보육교사 자질 강화 및 처우 개선을 큰 제목으로 하고 있다.

보육교사 처우·근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근무환경 개선비 단계적 인상, 대체교사 확대를 통한 업무 분담, 보육교사 스트레스·분노 관리 및 상담 프로그램 운영 등이 주 내용이다. CCTV 설치는 언급하지 않는다. 2010년 이명박 정권기 대책과 비교할 때 감시와 처벌의 형사정책 관점보다 보육환경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정책적 성격을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

2010년 대책의 형사정책적 성격이 2013년에는 왜 완화되는 현상을 보였을까?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핵심 공약으로 출범한 박근혜 정권의 초기 분위기가 중요한 요인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큰 흐름에는 첫째 감시와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 둘째 구조적 문제 해결과 보상 위주의 사회정책이 있다. 감시와 처벌은 당장 대중의 정서에 맞는 장점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덜하고 단기적 문제 해결 효과도 있다. 반면 구조적 문제 해결과 보상을 시도하는 사회정책은 장기적이지만 근본 대책을 제시하는 장점이 있다. 사회구성원 간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는 감시와 처벌에 비해 사회정책 차원의 근본적 문제 해결 시도는 사회적 평화로 가는 멀지만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2010년 대책에도 불구하고 재발한 2013년 어린이집 아동학대 대책은 감시와 처벌을 주 흐름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육교사에 대한 보상 강화라는 복지로써 어린이집 아동학대라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보육현장과 학부모 간 사회적 평화를 만들어간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런데 기초연금 논쟁을 계기로 복지부 장관이 그만두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선거 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놓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2015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대책을 CCTV로 대표되는 감시와 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처럼 둔갑시킨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아동학대 문제를 발생시키는 근본적 원인은 영리사업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보육서비스에서 찾을 수 있다. 비영리 국공립·법인 어린이집 비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지지 않는 한 어린이집 아동학대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감시와 처벌에서 벗어났던 2013년 대책은 국공립·법인 어린이집 확대 관련 청사진은 제시하지 못하였다. 보육교사 자격 기준 강화를 전제로 하되 적절한 보상과 근무 여건 개선이 뒤따르지 않으면 CCTV의 사각지대에서 아동학대는 계속될 것이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3년 남았다. 보육현장을 엄습하는 감시와 처벌의 형사정책으로써 선거 때의 복지 약속을 저버릴 것인가? 아니면 국공립 비중 확대라는 구조 변화와 보육교사 처우·근무환경 개선이라는 사회정책으로써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것인가? 선택을 위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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