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판이 바뀌었다

2016.09.01 21:39 입력 2016.09.01 21:47 수정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4반세기 이상의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고령의 피해자들과 전 세계 시민들의 지난한 노력이 모여 ‘가해자’ 일본의 국가책임을 묻는 거대한 강줄기를 만들어 왔는데 돌연 한국 정부라는 ‘몰역사의 보’가 가로막고 나섰다. 그래서 이제 ‘일본의 책임’만이 아니라 ‘한국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시론]‘위안부’ 문제, 판이 바뀌었다

작년 12월28일 한·일 정부간 합의의 핵심은 아베 정부가 10억엔을 내놓는 대신 박근혜 정부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과 ‘소녀상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 해결’을 약속해준 것이다. 이게 대체 뭐냐고 묻자, 아베 정부는 ‘치유금’ 10억엔으로 다 끝나는 것이며 소녀상 철거는 10억엔의 조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10억엔은 ‘사실상의 배상금’이며 소녀상에 대해서는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라고 거듭 주장했다.

8개월이 지나 10억엔이 송금돼 온 지금 아베 정부의 이야기는 전과 같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사실상의 배상금’이라는 주장을 접었다. 소녀상에 대해서도 “합의 이행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을 바꾸었다. 이제 더욱 확실해졌다. 한·일합의는 박근혜 정부가 ‘치유금’ 10억엔을 받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완전히 봉인하는 동시에 소녀상까지 철거하겠다고 약속해준 것이다.

2013년 2월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한·일 정상회담 개최와 연계시켰다. 그해 3·1절 기념사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대해 아베 정부는 정상회담을 ‘간절히’ 바란다는 제스처를 거듭하며 명분을 쌓았다. 그러면서도 일본의 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을 지워나갔다.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2007년 각의 결정도 거듭 확인했다. 그리고는 작년 8월14일 ‘종전 70주년 담화’를 발표하며 공세에 나섰다. ‘아베 담화’는 한국을 일본이 “전후 일관해서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진력”해 준 나라의 하나로 단 한 차례 언급했을 뿐이다. 반면에 한반도 강점의 징검다리였던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 아래 있던 많은 아시아·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준 것이라고 상찬했다.

박근혜 정부는 바로 그 아베 정부와 ‘굴욕적인 합의’를 맺었다. 내실 없이 목소리만 키우다가, 1965년에 그랬던 것처럼, 안보를 내세운 미국의 방패 아래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 정부의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든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외교장관이 나서서 ‘박근혜 정부만큼 열심히 한 정부는 없다’고 강변한다. 한 나라의 정부가 잘못된 길을 선택했으면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그 길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열심히’ 나아가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을 키우는 일일 뿐이다. 역대 정부는 1993년에 제정한 ‘생활안정지원과 기념사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미 150억원 이상의 ‘우리’ 예산으로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어왔다. 그런데 지금 100억원 남짓의 돈을 받고 그 모든 역사를 지우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자랑할 일인가.

이제라도 잘못된 합의를 폐기해야 한다. ‘합의 이행’에 매달리는 것은 잘못을 키우는 일이다.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늪 밖의 덩굴을 잡아야 한다. 자신의 상투를 당겨 올리며 용을 써보았자 더 깊이 늪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지난 8월30일 마침내 피해자들이 “참으로 참담한 심정으로” ‘자국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에 헌법재판소가 일본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위헌이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치유금’ 10억엔을 받고 ‘최종적·불가역적’으로 덮으려고 하는 데 대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에 대한 책임 추궁이다. ‘부작위’가 이어지는 한 매일매일 그 책임은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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