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에서 육아연수로

2018.05.30 21:06 입력 2018.05.30 21:07 수정
송수진 고려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노동 참여율은 57.1%, 남성 노동 참여율은 76.3%이다. 이러한 고용률 격차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여성의 경력단절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다. 여성 경력단절의 제일 큰 원인으로는 육아와 출산이 꼽힌다. 여성의 연령별 고용률 그래프 역시 수십년째 M자형 곡선을 그리며 이를 드러내고 있다. 가장 왕성한 노동 활동 연령대인 29~45세의 여성들이 노동 현장을 이탈한 후, 다시 돌아오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한창이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을 보면, 남녀 공히 육아휴직 신청가능, 노동자의 육아휴직에 따른 사업주 지원제도, 육아휴직을 이유로 불리한 처우 금지 등이 명시되어 있다. 즉, 우리가 제도가 없어서 육아 휴직을 못하는 건 아니다.

[시론]육아휴직에서 육아연수로

그러나 막상 현장의 태도는 다르다. 기업에서는 석사학위를 받는 것을 장려하고 심지어 재정적 지원을 주기도 하지만 비슷한 기간 동안 이뤄지는 육아 휴직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MBA(경영학 석사)를 받으면 의사결정 기술과 전략 기획 능력을 습득했다고 인정하고, 상위 직책으로 승진시키기도 하지만,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사람들은 덜 헌신적인 사람으로 여기거나, 종종 핵심부서에서 지원 부서로 이관되기도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제도가 있어도 사용하기 어려운 문화가 된다. 고용주뿐 아니라 직장 동료, 그리고 휴직 가능자 스스로도 육아휴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된다.

출산과 육아는 경력단절을 야기하는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여성의 노동력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사용하던 기술과 고도화된 현장 지식을 따라잡는 데 시간이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신입사원처럼 원점부터의 교육이 필요치는 않다. 기본적으로 ‘어디까지 했었지?’ 기억해 내고, 업무에 수반되는 관계를 재구축하고, 덜 쓰던 기술을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한편, 육아에서 돌아온 여성들은 새로운 스킬셋을 장착하고 업무현장으로 온다. 육아 경험은 공감, 리더십, 멀티태스킹, 우선순위 결정 등과 같이 중요한 조직 개발 역량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여성 창업가 리카르다 체차(Riccarda Zezza)는 20년 가까운 기업 재직 동안 참가했던 수많은 연수보다 두 번의 출산 휴가를 통해 필요한 조직 역량을 더 많이 습득하고, 이것이 본인만의 경험이 아닌 많은 부모들의 공유된 경험임을 알게 된다. 기업 또한 이를 적극 활용하여 혜택을 얻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육아연수’ 또는 ‘육아석사’(MaaM·Maternity as a Master)라는 개념을 주창하고 이를 사업화했다.

아이의 탄생은 일상생활의 재편성과 변화를 관리할 복잡한 시스템 구축을 요한다. 부모들은 시간과 자원을 최적화하고 목표와 우선순위에 따라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는 등 매일의 위기 속에서 멀티태스킹 능력과 창조적인 솔루션을 찾는 능력을 개발한다. 또한, 자녀의 욕구를 듣는 공감력과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습득하고,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지도하는 리더십 역량 등을 기르는 기회를 얻는다.

출산, 육아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떠나 있는 시간들을 디스카운트하면 사람들은 ‘육아’와 ‘일’ 사이에 선택하려 할 것이다. 실제로 여성들이 비즈니스, 정치 등의 분야에서 유리천장을 깨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자녀를 갖지 않으면 더 쉽게 위로 올라간다는 점도 이를 방증한다. 아이를 기르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삶과 경력에 피해를 받는다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평생에 걸쳐 좋은 시민, 유용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와 교육에 몰두한 어린 세대일수록, ‘부모로서의 자아’를 차순위로 돌리고 ‘사회인으로서의 자아’에 몰두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육아휴직을 ‘아이를 기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떠나 있는 시간’ ‘누군가 애는 낳아야 하니 잠깐 쉬게 해줘야 하는 시간’ ‘누군가 애는 길러야 하니 돈 덜 버는 아내가 쉬어라’라는 시각으로는 여성의 저조한 노동참여율도, 제도가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문화도, ‘엄마’와 ‘사회인’ 사이에 선택을 강요당하다 결국 저출산과 비혼을 택하는 젊은이들의 선택도 멈출 수 없다.

육아 휴직을 단순한 근무 시간의 관점이 아닌, 회사의 자산인 노동자들의 사기와 생산성 향상의 측면에서 재정의해야 한다. 고용주도, 노동자 자신도 더 많은 기술을 개발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풍부하게 할 학습의 시간으로 육아휴직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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