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혼음빙자 간음죄

2002.11.01 18:25

작년 3월인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한국인의 혼외(婚外)정사비율이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는 통계를 내보낸 적이 있다. 아시아라야 한국과 홍콩,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등 고작 5개국이었지만 한국 성인남자의 65%, 여성의 41%가 혼외정사경험이 있다고 대답해서 ‘최고’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나중에 부실한 통계로 밝혀지긴 했지만 씁쓸한 뒷맛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하기야 프랑스 같은 나라에는 결혼도 아니고 동거도 아닌 ‘팍’(pacs)이라는 기묘한 제도가 있다. 버젓이 법원에 등록까지 하는 걸 보면 단순한 동거는 아니고 그렇다고 정식결혼도 아닌 이 제도가 1999년 11월에 도입되자 3개월만에 3만쌍이 등록했다고 한다. 부부의 권리를 법으로 인정받기는 하지만 정식결혼이 아니라는 점에선 이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혼외정사인 셈이다.

프랑스가 혼외 동거커플을 법으로 보호해 주는 데 비해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선 혼외임신한 여성은 투석(投石)방식의 사형이라는 극형을 받아야 한다. 나이지리아 북부의 한 이슬람 법원은 남편과 이혼한 상태에서 사생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1심에서 돌에 맞아죽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여성단체들이 이처럼 잔인한 형벌에 항의하고 나섰지만 나이지리아의 이슬람단체들엔 결국 ‘쇠귀에 경읽기’로 끝나고 말았다.

엊그제 헌법재판소는 혼인빙자간음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아직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순결을 법으로 보호해 줘야 한다는 것이 합헌판결의 이유였다. 그동안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여성을 지키기 위한 간통죄나 ‘혼빙간’ 등의 법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물론 개인의 성(性)결정권을 법으로 재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소수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흐르는 세월과 함께 언젠가는 간통죄나 ‘혼빙간’도 폐기될 때가 올 것이다. 예부터 법(法)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광훈논설고문 kh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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