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대통령의 월남패망론

2016.07.01 21:05

베트남전 참전은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경제적 이유로 미국에 먼저 요청한 결과였다. 32만명이 참전해 5099명의 사망자와 1만1232명의 부상자, 15만9132명의 고엽제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 대가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참전 수당과 차관을 받았다. 10년의 참전 기간에 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5배나 늘었다.

숭고한 이념이나 사명감으로 참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1973년 한국군 철수 이후 베트남은 기억에서 멀어졌다. 사람들은 가수 김추자의 노래처럼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의 무사귀환에 안도하며 동네 잔치를 열었고 ‘월남’은 이내 잊혀졌다. 한국군이 저지른 양민학살, 부녀자 강간, 한국인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라이따이한’ 문제 등도 드러나지 않았다.

한국과 베트남은 1992년 국교를 재개해 현재 ‘포괄적 동반자 관계’가 됐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가 완전히 아문 것은 아니어서 양국관계는 그리 편치 않다. 2009년 베트남전 참전 유공자 처우 관련법을 개정할 때는 크게 사달이 나 단교 직전까지 갔다. 보훈처가 입법예고에서 ‘세계평화 유지에 공헌한 월남전쟁 유공자’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에 베트남이 강력 반발한 것이다. 베트남 입장에서는 ‘민족해방전쟁’ 당시 교전국이던 한국이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과 싸웠다고 했으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과거 월남 패망의 원인은 내부 분열과 무관심이었다”고 말해 물의를 빚고 있다. 상대국을 고려치 않고 ‘월남 패망’이라는 1970년대 용어를 사용한 것도 문제지만 그 원인을 관료·군인들의 부정부패가 아닌 내부 분열이라고 호도하는 용기가 더욱 놀랍다.

박 대통령의 ‘월남 패망’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대국민담화에서도 “월남이 패망할 때” 운운한 적이 있다.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을 했으니 실언은 아니다. 과거 베트남전 참전을 결정한 한국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어 이 같은 망언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고 베트남은 무슨 생각을 할까. 대통령은 원래 현실 인식이 그 정도이니 그렇다 치자. 이 말이 반복되는 동안 외교 참모들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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