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심재명 - 지키지 못한 엄마의 마지막

2012.05.14 22:02
심재명 | 명필름 대표

2006년 4월5일, 조금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하늘은 더없이 맑은 날이었다. 한 달여의 병원생활을 마친 엄마가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이기도 했다. ‘근위축성측상경화증’. 흔히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불치의 병을 얻어 3년 넘게 투병하던 엄마가 급기야 호흡근까지 마비되는 지경까지 이르러 혼수상태로 응급실로 실려 가신 지 한 달. 가족의 허락 하에 목에 구멍을 뚫어 인공호흡기를 달아 생명을 연장하는 시술을 마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오시는 날이었다.

매일 중환자실에 들러 엄마의 상태를 보고 가족이 돌아가며 입원실을 지켰던 터라 엄마가 돌아오시는 그 날은 마음이 훨씬 가벼웠다. 아버지와 올케 언니가 퇴원수속을 밟고 모셔오기로 해서 나는 그냥 회사로 출근했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으며 몇 시간 후 퇴근해서 만날 엄마 얼굴을 떠올렸다.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한 가지](60) 심재명 - 지키지 못한 엄마의 마지막

3년 전부터 엄마는 손가락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그 증상이 서서히 손에서 발과 다리로 이어지고 결국엔 온 몸이 마비되고야 말았다. 즉 운동신경 세포가 모조리 죽어버린 것이다. 6개월 전부터는 아예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음식물을 삼킬 수 없어 배에 구멍을 뚫어 호스를 달아 주사기로 식사 대용의 음료 등을 넣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신은 여전히 형형히 빛나고 있어서 우리들을 바라보고 웃고 슬퍼하고 걱정하고 있음을 눈빛과 입 표정으로 전하셨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정신이 딱딱한 돌처럼 굳어가는 육체의 감옥에 갇혀버린 형국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몸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봐야 하는 형벌. 인공호흡기 덕으로 몇 년은 더 사실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게 며칠 전이었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 진행하고 있는 시나리오 회의를 한 다음, 막 제작을 시작한 영화의 촬영 본을 확인하며 직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3시쯤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니 엄마가 죽었다.” 그건 마치 시커먼 동굴 저편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기분 나쁜 쇳소리 같았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사무실에서 겨우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으나, 이미 엄마는 숨을 거두고 정물처럼 침대에 누워계셨다. 귀여운 손녀가 할머니의 퇴원기념으로 서툴게 짠 분홍색 목도리를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이신 게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는데….

엄마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지 못한 나는 방바닥에 엎드려 짐승처럼 울었다. 함께 살면서 소변과 대변을 받아내고 주사기로 음식물을 넣고 아기처럼 가벼워진 몸을 안아 목욕을 시켜드렸던 그 긴 시간들이 이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미친 듯이 억울했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남매를 마지막으로 보지 못하고 눈을 감은 엄마가 얼마나 쓸쓸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왜 하필이면 오늘따라 퇴원 수속을 가족에게 미루고 회사에 갔을까. 한 나절쯤 회사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는데…. 손아귀가 부서질 것처럼 오래 힘주어 쥐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한순간에 놓쳐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엄마는 마치 내가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날아가버린 새처럼, 그렇게 떠나버리셨다.

내 인생에 후회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지난 일에 연연해하고 속을 끓이는 못난 내 성격은 매일 후회하고 매년 후회한다. 삶을 10년 단위로 끊어 후회하는 것들을 쌓아 창고에 넣어버리고 문을 잠그듯 애써 마음을 다잡고 살고 있지만 ‘엄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것은 여전히 후회된다. 언제쯤 이 후회의 기억이 흐려질지, 아직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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