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일본 방위백서’ 대응에 초계기 항의 왜 없었나

2022.11.15 10:49 입력 2022.11.15 10:56 수정

일본, 초계기·제주 관함식 관련 매년 일방적 주장
정부, 올해는 보도자료에 관련 내용 언급조차 없어
일본서 열린 관함식 ‘욱일기 함정’에 경례도 논란

2019년 1월 26일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해 일본 초계기의 위협 비행에 강력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왼쪽). 바로 전날 일본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해당 초계기가 배치된 해상자위대 아쓰기 기지를 방문했다. / 국방부 제공·연합뉴스

2019년 1월 26일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해 일본 초계기의 위협 비행에 강력히 대응하라고 지시했다(왼쪽). 바로 전날 일본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은 해당 초계기가 배치된 해상자위대 아쓰기 기지를 방문했다. / 국방부 제공·연합뉴스

[주간경향] 일본은 매년 ‘방위백서’를 발간해 공개한다. 일본 국방정책의 기본 방향과 주변국의 안보 정세를 분석한 내용 등이 담긴다. 일본은 여기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 이에 한국은 방위백서가 발간될 때마다 주한일본대사와 국방무관 등을 불러 강하게 항의한다. 보도자료도 배포해 한국의 입장을 공표한다.

일본은 2019년부터 방위백서에 기존 독도 문제에 더해 ‘일본 초계기’ 및 ‘제주 국제관함식의 일본 불참’과 관련한 내용을 새롭게 추가했다. 2개 사안은 한국이 잘못한 것이고 한국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일방적 주장이다. 한국도 유감을 표명하고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 이런 항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도 공개했다.

그런데 한국은 올해 보도자료에 일본 초계기와 제주 국제관함식 사건을 적시하지 않았다. 두 사건을 두고 항의했다는 내용이 없다. 특히 일본 초계기 사건을 둘러싼 갈등은 양국 간 매우 민감한 문제여서 의문이 제기된다.


일본 초계기 갈등 촉발

“일본 초계기의 위협비행은 세계 어느 나라 해군도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우방국에 대한 심대한 도발행위다.” 2019년 1월 당시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일본 초계기 사건이 불거진 뒤 해군작전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이 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 초계기 사건은 일본이 2018년 12월 한국 해군의 광개토대왕함(구축함)이 동해상에서 자국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비췄다고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한국 함정이 일본 초계기에 사격을 가하기 위해 목표물을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를 조준했다는 게 일본 입장이다.

한국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외려 일본 초계기가 북한 선박을 상대로 구조 작업을 벌이던 광개토대왕함을 향해 저공·위협비행을 했다고 반박했다. 항공기가 함정 위를 낮은 고도로 비행하면 승선자들은 상당한 위협감을 느낀다. 일본은 2019년 1월에도 3차례 더 한국 함정 주변을 위협비행했다. 이 사건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냉각됐다. 현재도 양국 간 풀어야 할 주요 현안으로 남아 있다.

이보다 앞선 2018년 10월에도 한일 간 충돌이 발생했다. 일본은 당시 한국이 주최한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막판에 불참을 결정했다. 당시 한국은 일본을 비롯한 참가국 전체에 해군기가 아닌 공식 국기를 게양할 것을 요청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함기로 사용하고 있어 한국 내 정서를 고려한 조치로 풀이됐다. 일본은 이에 반발하며 거절했다.


“일방적·부정적 기술에 깊은 유감”

이후 일본의 2019년 방위백서에는 “한국 방위당국의 부정적 대응 등이 한일의 방위협력·교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는 새로운 기술(記述)이 등장했다. ‘한국의 부정적 대응’의 예로 “한국 해군 구축함이 자위대 항공기에 대한 화기관제(사격통제) 레이더 조사(비춤) 사안”, “한국 주최 국제관함식에서 해상자위대 함기를 둘러싼 한국의 대응” 등을 지칭했다. 그러면서 “방위성·자위대로서는 이런 현안에 대해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일본의 일방적 주장이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2019년 9월 27일 일본 방위백서 발간 직후, 주한일본 국방무관을 국방부로 초치했다. 독도 문제와 함께 일본 초계기 및 제주 국제관함식 관련 내용을 항의했다.

국방부는 ‘2019 일본 방위백서 기술내용 관련 항의’ 보도자료도 냈다. 국방부는 “우리 함정이 일본 초계기에 대해 레이더를 조사했다는 반복적이고 일방적 주장과 국제관함식의 해상자위대 불참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하는 부정적인 기술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며 “이에 대한 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일본은 2020~2021년 방위백서에도 같은 내용을 담았다. 한국 국방부도 기존처럼 국방무관 초치와 보도자료 배포 등으로 맞대응했다.

일본이 지난 7월 발간한 방위백서에서 ‘일본 초계기’과 ‘제주 국제관함식의 일본 불참’ 사안을 두고 한국 측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기술했다. /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일본이 지난 7월 발간한 방위백서에서 ‘일본 초계기’과 ‘제주 국제관함식의 일본 불참’ 사안을 두고 한국 측에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기술했다. /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항의했지만 보도자료에 넣지 않아”

올해는 한국의 대응 양상이 다소 달랐다. 일본은 지난 7월 방위백서에서 기존처럼 독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또 한국 함정이 일본 초계기에 레이더를 조준했고, 제주 국제관함식 불참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반복했다. 국방부도 주한일본 국방무관을 불러 항의했다. 국방부는 보도자료에서 “부당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함과 동시에 독도 영유권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할 것임을 천명했다”라고 밝혔다. 여기까진 예년과 똑같다.

그러나 보도자료에서 일본 초계기 및 제주 국제관함식과 관련한 일본의 주장을 두고 한국 정부가 항의했다는 내용이 빠졌다. 대신 “한일 국방현안에 대해 일방적 기술을 지속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깊은 유감을 표하고 이런 내용의 즉각적인 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고만 했다.

국방부는 항의를 하지 않은 것일까.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답변을 보면, 국방부는 “일본 초계기 및 제주 국제관함식 불참 관련 일본의 일방적 기술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시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항의는 했다는 얘기다. 국방부는 다만 “보도자료 문구는 한일 국방당국 간 현안을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자는 데 공감이 형성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했다”고 답했다. 한일 간 민감한 문제를 거론해 갈등을 키우기보다 향후 원만한 문제해결을 위해 수위를 낮췄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런 대응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의 방위백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자료다. 영문판도 제작한다.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는 수단이다. 실제 방위백서에는 백서가 일본 국민과 국제사회를 향한 내용이라는 취지의 설명이 들어 있다.

반면 한국은 방위백서에 대응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2개 사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실제 국방부가 일본 초계기와 제주 국제관함식 불참 문제를 두고 일본에 항의했다는 언론기사는 보도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와 국제사회에 한국이 일본의 주장을 수용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경숙 의원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일본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한국 정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분명한 공식입장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등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일본의 주장이 마치 ‘팩트’인 것처럼 오인될 수 있고 나아가 팩트로 굳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방부가 실제 일본에 항의를 했는지도 의심된다”고 했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도 “초계기 문제는 일본이 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의제”라며 “일본은 진상규명이 불가능한 요구만 하면서 한국이 무조건 사과하고 굴욕을 감수하라는 식으로 나오고 있는데 국방부가 이를 묻고 가려는 것은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검토했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눈치를 보는 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주간경향의 질의에 “올해 일본 방위백서 발표 시 초계기 문제와 제주 국제관함식 문제에 대해 전년도와 동일한 수준으로 항의했다. 보도자료에는 두 가지 문제를 ‘국방현안’으로 통칭해 기술한 것”이라고 재차 밝혔다.

국방부는 다음과 같은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함정이 일본 초계기에 대해 추적 레이더를 조사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 이 같은 오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일본 측에 노력을 촉구”, “일본의 제주 국제관함식 불참은 우리가 통보한 해상사열 원칙을 일본이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발생한 것임을 분명히 함” 등이다.

일본이 지난 11월 6일 가나가와현 사가미만에서 개최한 국제관함식에서 한국 해군 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이 지난 11월 6일 가나가와현 사가미만에서 개최한 국제관함식에서 한국 해군 장병들이 거수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함식 초청해 놓고 초계기 문제 꺼내

일본 초계기와 제주 국제관함식 사건은 한국 해군이 최근 일본의 국제관함식에 참석한 상황과 맞물려 다시 거론됐다. 일본은 지난 11월 6일 가나가와현 사가미만에서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관함식을 개최했다. 한국 해군도 소양함(군수지원함)을 보냈다. 소양함 승선 장병들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탑승한 호위함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호위함엔 해상자위대 깃발인 욱일기가 걸렸다.

일본은 지난 1월 관함식에 한국을 초청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한국은 지난 8월 관함식의 구체적 날짜가 확정된 뒤부터 참가 여부를 본격 검토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2018년 제주 국제관함식에 일본이 욱일기 문제로 불참한 사건을 들며, 한국이 일본 국제관함식에서 욱일기가 달린 함정에 경례를 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말이 나왔다. 독도, 강제징용, 수출규제 등 현안을 두고 일본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도 고려해 불참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 관함식 개최 직전에 일본 정치권에서 초계기 문제를 꺼내들어 논란이 됐다. 일본 여당인 자민당 의원 그룹인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은 지난 11월 1일 긴급성명을 내고 한국이 관함식에 초대된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고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 이들은 일본 초계기 사건 이후 진상규명이나 한국의 사과가 없었던 점 등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 야당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월 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함식에 참석한 여러 국가가 어떻게 생각하겠나. 초계기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가해자이고 일본이 피해자라고 생각할 것 아닌가”라며 “자민당에서 초계기로 시비를 걸고 유감을 표시하는데 우리는 자존심 없이 (관함식에) 참가할 것인가”라고 했다. 이어 “이를 그대로 놔두면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가해자로 낙인찍힌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국가 이익을 위해” 일본 관함식에 참석했다는 입장이다. 한일 및 한·미·일의 군사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얘기다. 윤석열 정부가 추구하는 한일관계 개선과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움직임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관함식 개최 직후인 지난 11월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참석해 “일부 (자민당) 의원들이 반대한 건 있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라며 “국제관함식 참석 문제는 안보 차원에서 국가적 이익을 위해 참여한 것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욱일기 논란을 놓고는 “욱일기에 (경례를) 한 게 아니다. 관함식을 주최하는 국가의 대표가 승선한 함정을 향해 국제관례에 따라 경례를 한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도 지난 10월 27일 일본 관함식 참가 결정을 발표하면서 “최근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야기된 한반도 주변의 엄중한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해군의 이번 국제관함식 참가가 갖는 안보상 함의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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