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위원 반론

北 세습비판이 내정간섭?

2010.10.07 23:39 입력 2010.10.10 15:41 수정
이대근 논설위원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민주노동당이 논평을 통해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비판하기는 커녕 이를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민주당 송민순의원도 유사한 내용으로 진보세력이 북한의 봉건적 행태를 적극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세습을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노동당 새 세상 연구소, 박경순 새 세상 연구소 부소장은 3대 세습을 비판해서는 안되는 몇 가지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3대 세습이 불편하다고 그걸 그릇된 것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다른 이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3대 세습은 북한내정이다. 따라서 내정간섭을 해서는 안된다.

셋째, 3대 세습이 김정일 아들이기 때문인지 후계자로서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토론하는 것이 옳은가.

넷째, 3대 세습 정권과는 대화도 하지 말라는 말이냐.

다섯째,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으면 다 종북집단이냐. 중국, 러시아, 미국도 3대 세습 비판하지 않았으니 이들도 종북세력이냐.

여섯째, 후계자론은 검증받은 이론이다.

일곱째, 3대 세습 비판은 오리엔탈리즘이다.

첫째는 북한사람에 대한 대단한 모독입니다. 북한사람은 우리와 달리, 봉건적 통치 체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죠.

북한사람들은 자기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통해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인가요. 그들은 세습을 당연시 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니 보편적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인가요.

둘째는 국가 주권을 절대시 하는 위험한 사고입니다. 내정간섭 배제 논리는 국가의 권위는 절대적이어서 그 국가가 시민과 어떤 관계를 맺든, 국가가 시민들을 어떻게 학대하든 외부세계는 절대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게 21세기에 통하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가의 주권 보다 더 소중한 것이 많습니다. 민주주의, 인간다운 삶, 인권이 국가 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한 세기 전에는 인간으로서의 보편적 가치와 국가 주권 간 어느 것이 우위냐 논쟁이 있었지만, 이제 그 논쟁은 끝났습니다. 당연히 인간이지요.

자기 시민에 대한 비인간적 행위, 비인도주의적 행태, 비민주주의적 정부, 반인권적 국가에 대해 누구나 어떤 외부인이든 인간이라는 자격으로, 인류라는 동류의식으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하고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아마 민주노동당도 미국의 부시 정권에 대해, 일본의 자민당 정권에 대해, 이스라엘 정권에 대해 인권과 민주주의 혹은 평화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내걸고 내정간섭을 하지는 않았는지 한번 자료를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북한은 남이 아닙니다. 우리의 운명과 많이 얽혀있지요. 남의 일이니 간섭하지 말자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겪는 고통, 부당한 대우, 굶주리, 비인간적 대우에 대해 어떻게 아무 말고 하지 말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까. 유독 문제 많은 북한 정권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내정간섭 불가를 적용해야 합니까. 누구를 위해서 입니까.

셋째는 편의적 무지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 같네요. 평소 북한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정통하고 잘 아는 것처럼 말하다가도 북한에 관한 부정적 소식만 나오면 갑자기 알 수가 없다고 불가지론을 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철학적 사색을 즐긴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인식론의 문제를 제기한 건데요. 진정 안다는 것은 무엇이냐 이런 거지요. 우리의 감각에 노출되면 아는 것이냐, 보인다고 실존하는 것이냐,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느냐 등등. 이러면 정말 무엇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정당이 존재하기도 어렵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세상 온갖 일에 다 내정간섭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눈에 뻔히 보이는 잘못을 잘못인지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그 하해와 같은 이해심과 배려가 왜 오직 북한을 향해서만 발휘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요.

북한의 지배세력은 그렇게 보호받아야 할 특별한 존재인 것입니까.

자질이 있건 없건 수령이 차기 수령을 자기 아들로 지명하는 것으로 후계자가 결정되는 일을 어떻게 세습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입니까.

3대 세습을 아들이라는 이유 말고 다른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요? 시간이 지나면 그게 밝혀진다고, 판단중지를 요청하신다면, 현세의 삶이란 정말 덧이 없는 것이겠군요. 오직 미래의 역사책을 통해서만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니까요.

넷째는 오해입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도 지적했듯이 3대 세습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입니다.

도덕적 판단과 정책적 판단입니다. 3대 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도덕적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회피하면서 "그렇다면, 대화하지 말라는 말이냐"라며, 정책적 판단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논점을 들고 나와 반박을 하고 있네요. 그런 주장을 한 적도 없는데요. 3대 세습이 나쁘다고 해도 당연히 대화를 해야지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섯째는 의도적인 논리적 왜곡입니다. 어떤 코흘리개가 그런 주장을 할까요. 그런 식의 논리로 경향신문 사설이 3대 세습을 비판했다면, 이명박 정권도 종북세력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일반적으로 도덕적 철학적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북한은 대화상대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정부는 전략적 판단을 합니다. 이명박 정권은 전략적으로 3대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합니다.

현인택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여당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3대 세습 비판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지요. 현장관이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았다고 누가 현장관은 종북세력이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다고 종북 딱지를 붙이겠다는 것이냐는 식의 항변이 무슨 반론이라도 되는 건가요. 질문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맥락을 살펴 보아야 합나디.

여섯째는 황당합니다. 후계자론은 누가 검증했다는 것인가요. 김정일과 집권 엘리트가 그냥 그렇게 정한 것이 아닌가요. 북한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후계자론을 선택하고 받아들였나요.

일곱째는 충격적 자기 고발입니다. 우리의 왜곡된 시각으로 북한을 평가하지 말고 북한 나름의 훌륭한 시각과 기준이 있으니 그 걸 존중해야 하고, 그런 기준에 따르면 북한의 3대 세습은 매우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우리 처럼 일반적인 상식과 순리, 이성이 없는 존재이거나, 북한에는 인류가 축적하고 확인한 보편적인 가치를 적용할 수 없는 동물농장 같은 곳이라도 된다는 이야기 같군요.

북한사람들은 인권 없이도 살아가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존재로 타자화하는 군요. 이것이 오리엔탈리즘 아닌가요.

※자세한 내용은 이대근 블로그 ‘세상에 속지 않기’(http://yidaekeun.khan.kr)에 실려 있습니다.

<이대근 논설위원>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논평

‘종북 논란’ 부추기는 경향신문 사설에 부쳐

민주노동당의 ‘친북적’ 행위를 보수 언론에서 비난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치부할 수 있다. 진보개혁 언론에서 민주노동당의 ‘친북적’ 행위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반북’ 혹은 ‘비북’ 행위보다 ‘친북’ 행위가 평화통일을 위한 것이라는 신념속에서 민주노동당 역시 ‘반북’과 ‘비북’ 행위를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노당은 3대 세습을 인정하겠다는 것인가”라는 10월 1일자 경향신문의 사설같은 경우라면 곤란하다. 무엇을 위한 비판인지 그 비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호하거나 혹은 대단히 위험스러운 맥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 사설은 ‘진보라고 자처하는 일부 세력’(타겟은 민주노동당이다)에게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북한 추종행위’이며 ‘냉전적 사고의 잔재’라고 주장한다.

경향신문에 묻고 싶다. ‘북한의 3대 세습’을 인정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김정일 정권의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결국 무위에 그칠 경우 즉 북측 정권이 그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3대 세습’을 강행했을 경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3대 세습’하는 북측 정권과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말겠다는 것인가. 경향 사설이 그같은 점을 분명히 하고 있지 않지만 그 맥락을 보면 ‘3대 세습 정권’과는 대화할 수 없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다시 한번 경향에 묻고 싶다. ‘3대 세습’ 정권과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3대 세습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북측 정권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그 정권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3대 세습’을 문제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행위인가 아닌가 판단이 필요하다. ‘3대 세습 정권’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화 상대방으로 인정한다면 ‘3대 세습’ 문제는 불편하지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자기 만족감을 가져다 줄수는 있지만 남북관계 발전의 측면에서나 한반도 정세 발전의 측면에서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다. 남측 사회의 상식적 시각에서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고 동의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민주노동당 내에도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어렵고 동의하기 어려워 하는 당원들도 많이 있다. 굳이 밝히자면 필자 역시 그같은 당원 중에 한명이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다는 논평은 가능하다. 받아들이기 어렵고 동의하기 어렵다는 논평은 가능하다.

그러나 ‘인정할 수 없다’는 논평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인정에 대한 조건’이 붙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3대 세습’ 뿐 아니라 ‘북한 체제와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같은 사고야 말로 냉전적 사고의 잔재이고, 6.15와 10.4 선언 정신에 반하는 것이라고 민주노동당은 판단하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다고 하여 ‘북한 추종’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하다. 상대방을 객체화하고 타자화하여 자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규정하고 그 잣대에 어긋난다고 하여 ‘종북’이니 ‘냉전잔재’니 딱지를 붙이는 것은, 술자리의 안주감으로 삼을 수는 있어도 언론사의 공식 논평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유럽 사회의 오리엔탈리즘이 결국 19세기와 20세기 유럽열강의 아시아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것이 ‘북한 정권’이 되었건 민주노동당이 되었건 상대방을 타자화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결국 상대방에 대한 패권적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경향신문의 위 사설은 유감을 넘어 불쾌한 일이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논평(10월1일 전문)

북 후계 구축 착수와 당 대표자회의 평가와 분석

-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경계하며 -

북 후계구도 착수, 불편하지만 인정해야 할 북한의 내정

44년만에 개최된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삼남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앞서 김정은을 조선인민군 대장 칭호를 사용한다는 명령이 김정일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 이름으로 하달되기도 했다. 이로써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이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일본 외무상이 적절하게 지적했던 것처럼 “(김정은이) 후계자로 결정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이 어느 만큼 속도감 있고, 어느 만큼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3대 세습’이라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총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남측 사회에서도 북측의 후계자 구축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확산되고 있다.

‘삼대세습’을 바라보는 남측 사회의 마음 역시 불편하다. 그러나 불편하다는 것이 그릇된 것으로 직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에게 불편하다고 인식되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이 대단히 불편한 일이긴 하지만,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은 인정해야 하는 북측의 내정인 것이다.

이는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정신에 입각해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남과 북은 두 개의 정상선언에서 상호 체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김정은이나 혹은 다른 인물이 후계자가 되는 것은 북측의 내정이며 북측의 내정을 존중하는 것이 남북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남측 사회의 가치와 상식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존중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존중하지 않겠다는 것은 상호 체제인정과 존중이라는 남북 사이의 합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비록 이해하기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남북관계 발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북측의 내정을 존중하는 것이 두 정상선언의 정신이다.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따라서 주목해야 할 것은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의 본격화가 남북관계 발전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지 여부이다. 이는 다시 북측 체제의 안정성이라는 내적 측면과 한반도 정세의 안정성이라는 외적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김정은 후계자 구축 작업이 북측 사회주의 체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한다.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로 구축되었을 때 특히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했을 때 국제사회는 북측의 붕괴를 예견했다. ‘김일성의 아들’ 외에 아무런 능력도 자질도 없는 사람이 지도하는 사회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북측은 붕괴되지 않았고, 안정화되었다.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의 아들’에서 ‘북측 정권의 최고지도자’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후계자의 지위에 가까워진 이유가 단지 ‘김정일의 아들’ 때문인지, ‘후계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기 때문인지 여부는 좀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명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재추대되고, 당의 지도기관 선거가 마무리됨으로써 김정일 체제가 견고하며, ‘당적 영도’가 공고화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번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북측 체제는 더욱 안정화되어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후계구도 작업의 본격화가 북측 사회주의 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둘째, 김정은 후계자 구축 작업이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북측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후계 구축 작업이 ‘정권 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대외정책 변화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볼 근거 역시 없다.

대개 북측 체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북측 체제의 불안정성이 한밥도 정세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유례없는 3대째로의 세습은 충격적일 뿐 아니라 권력세습 안정화를 이루기 위해서 대외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는 한나라당 대변인의 논평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김정은 후계 여부와 무관하게 북측 체제는 불안정하기만 하다. 김정은 후계 구도 착수 이전에 북측 체제가 안정되었다고 인정했다면 이같은 논평이 최소한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만 이미 전부터 북 체제의 불안정성을 ‘우려’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정세 전망은 그들의 ‘바람’이거나 근거 없는 말로 국민을 호도하는 것일 뿐이다.

김정은 후계 구축 작업 자체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아 보인다. 권력 승계 여부와 무관하게 북측은 자신이 설정한 대외정책, 대남정책을 일관되게 밀고 나갈 것이며, 정세의 유동성은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전개과정에 달려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조선로동당 규약 개정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번 당대표자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조선로동당의 규약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당 규약 서문에서 ‘사회주의 완전한 승리’라는 표현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로 바뀌었으며,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당의 최종 목적이 ‘인민대중의 완전한 자주성 실현’으로 대체되었다.

이같은 개정은 대외정책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 북측 자체의 상황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의 구분이 없는 계급이 하나뿐인 사회’인 공산주의 건설에 대한 현실적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완전한 승리’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로 바뀐 대목 역시 2012년 강성대국 건설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논란 중 하나는 이번에 진행된 당 규약 개정이 ‘대남 적화 노선’의 변경 여부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개념을 정립해야 할 것은 ‘대남적화 노선’과 ‘대남 적화통일 노선’의 차이이다.

문제의 대목을 보자.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며,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수행하는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

위 문장은 당면목표와 전국적 범위, 최종 목표라는 세 항목을 담고 있다. 문제의 ‘대남적화 노선’은 최종목표라는 항목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최종목표는 통일 여부와 상관없는 말 그대로 최종목표라는 점에서 ‘대남 적화통일 노선’과 일치한다고 볼 수 없다. ‘대남 적화통일 노선’은 전국적 범위를 설명하는 항목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의 과업’을 ‘적화통일 노선’으로 단정짓기는 무리가 따른다.

당 규약 서문의 다른 대목을 보면 확인된다.

“조선노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 침략무력을 몰아내고 온갖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끝장내며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의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위한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 성원하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을 통일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위 대목에는 적화통일 노선이라 부를 수 있는 내용이 전혀 없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은 이미 남과 북이 합의한 사항이며, 미제를 몰아내는 것,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 등은 남측 사회의 시각에서 과격한 표현일 수는 있어도 이것이 적화통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남측과 국제사회를 고려하여 그 표현을 수위를 상당히 완화시킨 대목이 눈에 뛴다. 아래는 1980년 개정된 서문 중 위의 내용을 담고 있는 대목이다(밑줄 그은 표현을 비교해보라).

“조선로동당은 남조선에서 미제국주의 침략군대를 몰아내고 식민지 통치를 청산하며 그리고 일본 군국주의의 재침기도를 좌절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남조선 인민들의 사회민주화와 생존권투쟁을 적극 지원하고 조국을 자주적 평화적 민족대단결의 원칙에 기초하여 통일을 이룩하고 나라와 민족의 통일적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투쟁한다.”

결국 당규약은 궁극적 목표로 ‘적화노선’을 규정하고 있을지언정 ‘적화통일 노선’을 규정하고 있는 대목은 없다. 그렇다면 궁극적 목표로 제시된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있다”는 표현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물론 이 대목에서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한다는 것은 곧 ‘사회주를 건설한다’는 적화노선을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소 ‘포용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즉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측이 ‘사회주의 건설’을 목표로 삼는 것 자체를 당 규약에 명시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일까 하는 점이다. 남측의 헌법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흡수통일 노선’을 헌법상에서 견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조선로동당 규약에서 선행적으로 이와 같은 궁극적인 목표가 사라진다면 남측 헌법을 평화통일 지향적인 헌법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객관적 조건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측의 평화통일 운동 진영에서 아쉬워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겨레에서 김연철 박사가 적절히 표현했듯이 “남한 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에도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여 매우 유감”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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