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한국을 ‘적’으로 규정…북·미 사이 ‘촉진자’ 입지 위축

2020.06.09 20:51 입력 2020.06.09 20:56 수정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위기

북한이 9일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선을 차단키로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위기를 맞게 됐다. 청와대 핫라인을 포함한 남북 연락채널 단절은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 기조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대결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 추진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입지를 축소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북한은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선 차단·폐기 방침을 발표하고, 대남업무를 ‘대적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태도는 지난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일관된 흐름이자 대북전단 살포 문제 등을 들어 남측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남북-북·미관계 선순환’ 구상 타격
북, 보건분야 협력 제안에도 불응…돌파구 절실

그러나 2018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무드의 상징적 조치였던 연락기능이 끊기면서 문재인 정부가 자임해온 ‘촉진자’ 역할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과거 북한이 핵 문제의 당사자는 미국이라며 남측을 ‘배제’할 때마다 한국은 ‘워싱턴에서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울을 거쳐야 한다’며 정부가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반도 문제 논의 과정에서 한국이 이해당사자로서 미국과 북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날 남북 연락채널 차단에 대해 “남조선 것들과의 일체 접촉공간을 완전격폐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한 첫 단계 행동”이라고 밝힌 만큼 단기간에 대북 접촉이 복원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관계에 밝은 정부 소식통은 “북측과 연락이 닿아야 미국 등 주변국에도 발언권이 생기는데 쉽지 않은 상황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구상으로 피력한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북·미관계 견인’ 구상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됐다. 문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보였던 남북 협력사업은 대북 제재와 북한의 정면돌파전 기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빠른 시일 내에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정부는 북측에 코로나19 국면에서 가능한 보건협력을 제안하는 등 호응을 기다려왔으나 그마저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달나라타령’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조선 집권자가 북남합의 이후 제일 많이 입에 올린 타령을 꼽으라고 하면 ‘선순환 관계’ 타령일 것”이라며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남북-북·미관계 선순환’ 구상을 비판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남북, 북·미 대화 교착 속에 북한과 중국이 밀착하면서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무력화됐다고 진단했다.

북한이 최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담화, 통일전선부 대변인 담화 등에서 예고한 대로 9·19 군사합의 파기, 개성공업단지 폐쇄 등 추가 행동에 나설 경우 한반도 정세가 험악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미국 대선을 의식해 당장 고강도 도발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국지적 수준의 긴장 고조 행위를 벌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지금은 무엇보다도 북한의 의도와 배경을 상세하게 분석해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며 “한·미를 포함해 다각도에서 대화를 이뤄내는 것이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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