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북 미사일 발사날 찾은 판문점…적막 속 명맥만 남은 ‘평화와 대화’

2022.10.04 16:31 입력 2022.10.04 18:23 수정

한국군과 유엔사가 4일 오전 판문점 남측 구역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왼편 하늘색 건물이 T2(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정면 가운데 건물은 판문점 북측의 판문각. 박광연 기자

한국군과 유엔사가 4일 오전 판문점 남측 구역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왼편 하늘색 건물이 T2(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정면 가운데 건물은 판문점 북측의 판문각. 박광연 기자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4일 찾은 경기 파주시 판문점에는 적막감이 가득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북한군은 판문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공사 중인 하늘색 도보다리와 2018년 남북 정상이 세운 기념비만이 이곳이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음을 나타냈다. 북한과의 대화는 유엔사와 북측의 ‘핫라인’을 통해 최소한으로나마 이뤄지고 있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엔 북한군이 판문각 안에만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판문점에 있는 하늘색 T2 회담장 안에서 그리프 호프만 유엔사 국제정치군사담당관(중령)이 내외신 취재진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가 사용하는 T2 회담장은 판문점 북측 건물인 판문각과 남측 건물인 자유의집 사이에 있다. T2 회담장 가운데 놓인 직사각형 모양의 탁자를 중심으로 윗쪽은 북한, 아랫쪽은 남한이다.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북한군 활동이 보이지 않은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호프만 중령은 “코로나19 발병 이후 (북한군이 판문각에서) 나오는 걸 거의 못봤고, 북한군과 대면 회의를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를 상징하듯 T2 회담장 바깥의 북측 도로는 관리되지 못하고 낙후돼 있었다.

판문점 남측 구역 3초소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 마을과 개성공단. 마을 가운데에 보이는 170m 깃대에 인공기가 걸려있다. 박광연 기자

판문점 남측 구역 3초소에서 바라본 북한 기정동 마을과 개성공단. 마을 가운데에 보이는 170m 깃대에 인공기가 걸려있다. 박광연 기자

2020년 초 코로나19가 발생하자 국경을 걸어닫고 고립을 자처한 북한의 현실을 드러낸 셈이다. 호프만 중령은 “(북한군이) 가끔 판문각 2층 밖으로 나올 땐 거의 방호복으로 무장했다”며 “(판문각) 창문 커튼을 걷고 우리 측이 뭘 하는지 지켜보는 경우는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날도 판문각 꼭대기층 한켠에서 커튼 사이로 남측 내외신 취재진을 관찰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 유엔사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판문점 방문 당시 판문각 안에서 다수의 북한 사람들이 쳐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때 판문점은 한반도 평화를 상징하는 장소였다.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9년엔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참여한 남·북·미 정상회동이 역사상 최초로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들이 T2 회담장 건물 오른편 바닥에 콘크리트로 된 군사분계선(MDL)을 넘나든 장면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판문점에 위치한 도보다리. 박광연 기자

판문점에 위치한 도보다리. 박광연 기자

남한과 북한, 북한과 미국의 대화·교류가 단절된 현재 판문점에는 과거 ‘평화의 상징’들이 빛이 바랜 채 남아있다. 2018년 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단둘이 차를 마시며 대화한 T자 모양의 하늘색 도보다리는 통행이 중단됐다.

호프만 중령은 “보통 (판문점) 투어를 진행하면 도보다리를 꼭 방문하지만 지금 부식으로 공사가 진행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많은 인원들이 다리에 올라가는 건 위험하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선언과 함께 공동으로 심은 소나무는 그대로였다. 소나무 왼편에 위치한 기념비에 새겨진 ‘평화와 번영을 심다’라는 문구는 당시 남북 화해 분위기를 가늠케 했다.

2018년 4월26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맞아 판문점 내에 심은 소나무와 기념비. 박광연 기자

2018년 4월26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선언을 맞아 판문점 내에 심은 소나무와 기념비. 박광연 기자

10·4 남북 공동선언 15주년을 맞은 이날,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북한은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지난 열흘새 다섯번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남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간 정례 통화는 이날 일시 중단됐다.

그러나 판문점 내 유엔사와 북한군 사이 ‘핫라인’은 이날도 끊기지 않았다. 호프만 중령은 “북측으로 연결되는 전화기가 있는 건물에 유엔사 군인과 통역관이 24시간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여름 DMZ(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고자 헬기가 진입한다는 사실도 해당 핫라인을 통해 북측에 전달됐다. 남측 자유의집과 북측 판문각에 각각 설치된 CC(폐쇄회로)TV 영상은 양측에 서로 공유되고 있다.

호프만 중령은 판문점이 대결이 아닌 평화의 구역임을 강조했다. “저희가 한 가지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점은 바로 이 지역이 유엔사가 북한군과 소통을 하는 지역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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