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 소통서 쌍방향 소통으로… ‘토크콘서트’ 유행

2011.11.27 22:01 입력 2011.11.27 22:46 수정

정치권도 ‘안철수식 토크’ 따라하기 나서

지난 23일 저녁 서울 마포구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 배우 김여진씨가 이끄는 ‘청춘콘서트 2.0’이 문을 열었다. ‘안철수·박경철의 청춘콘서트’가 주제별 대화로 바뀌었고, 비정규직이 첫날의 화두였다. 콘서트엔 “행동도 하자”는 취지로 ‘액션토크’라는 별칭도 붙였다. 긴 대화 끝에 ‘알바에게 주휴수당을 안 주려고 꼼수 부리는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와 커피빈에 가지 말자’ ‘배달시킬 때는 빨리 갖다달라고 말하지 말자’ ‘청년의 아픔을 담은 트위터 메시지는 무조건 리트윗한다’ 등이 무대와 객석이 공감한 실천사항으로 제시됐다.

같은 시간 서울 광진구 건국대의 한 강당에는 삼성전자 이돈주 부사장이 무대에 섰다. “지금부터 꿈의 기준을 정해드립니다. 내가 가진 꿈이 걱정된다, 그럼 이거 꿈 아닙니다. 걱정되면 꿈 아닌 겁니다잉. 걱정 대신 열정을 가져야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잉.” 그는 KBS 2TV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인 ‘애정남’을 따라하며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삼성이 열고 있는 토크콘서트 ‘열정락(樂)서’의 한 장면이다.

그날 낮 대전대학교 강당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대학생들과 마주했다. 절제된 말로 다소 딱딱한 강연만 해왔던 평소와 다르게 그는 문답 위주로 대화했다. 옛날 사진을 보여주고 대학생활·연애·미팅 이야기도 섞었다. 마지막엔 학생들이 종이비행기로 날린 질문에 답하기도 했다. 전국을 돌겠다고 시작한 특강정치의 첫날이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앞줄 오른쪽)과 박경철 안동신세계클리닉 원장(왼쪽)이 지난 9월7일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열린 ‘희망공간 2011 청춘콘서트’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다 웃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앞줄 오른쪽)과 박경철 안동신세계클리닉 원장(왼쪽)이 지난 9월7일 경북 구미 금오공대에서 열린 ‘희망공간 2011 청춘콘서트’에서 학생들과 대화하다 웃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바야흐로 ‘토크 콘서트 시대’가 열리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이 3년간 전국을 돌며 돌풍을 일으킨 청춘콘서트의 틀과 방식이 대중화한 것이다. 정치인·총리·경제인·배우·개그맨이 그 바통을 받은 것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t운명> 북콘서트가 열렸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는 ‘드림토크’를 진행 중이다. 김문수 경기도지사,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한나라당 원희룡·홍정욱 의원도 청중과 대화하는 행사를 만들었다. 삼성의 ‘열정락서’에선 삼성 임원들과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 개그맨·가수들이 멘토로 나온다. 강기갑 의원과 작가 공선옥씨의 <강씨공씨 북콘서트>처럼 의원들의 대화식 출판기념회도 늘고 있다. 형식과 등장인물은 조금씩 다르지만 강연식 진행보다 청중과의 문답, 게스트 간 대화로 이어가는 점이 공통점이다.

토크콘서트가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르부터 달라졌다. 이제껏 유명인·정치인의 대중 행사는 일방적 ‘강연’ 후 문답 풀이를 더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토크콘서트는 ‘공연’이다. 청중은 게스트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감상’하고 나름의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안철수 원장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9월4일, 청춘콘서트 현장에서 박경철 원장은 안 원장에게 대놓고 묻는다. “안 선생님답게 뒤에서 숨어서 호박씨…이러지 말고 물어보죠, 왜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객석에선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23일 대전대학교에서 대전지역 사립대 총학생회연합 초청으로 열린 ‘내 마음속의 사진’ 특강에서 무대 위에 홀로 서서 대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지난 23일 대전대학교에서 대전지역 사립대 총학생회연합 초청으로 열린 ‘내 마음속의 사진’ 특강에서 무대 위에 홀로 서서 대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강연과 달리 콘서트에서 청중은 진행자와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고 MBC TV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의 청중평가단 같은 입장이 된다”며 “그 점 때문에 토크콘서트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친화적”이라고 설명한다. 청중은 토크콘서트 감상평을 트위터·페이스북·블로그에 올리고, 그렇게 나온 메시지는 더욱 강하고 빠르게 전파된다.

청중 질문 자체가 주제가 되기도 한다. 방송인 김제동씨의 ‘청춘콘서트 2.0’에서는 청중이 “창의력이 중요하다면서 왜 스펙을 보나”거나, “학벌 차별은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질문을 하면 김씨와 대화하는 식이었다.

토크콘서트 붐의 이면에는 정당들의 무능함이 있다. 학벌만능주의부터 고액등록금, 청년실업, 비정규직 차별, 결혼·육아 문제까지…. 청년들은 사회문제가 교차되는 최일선에 서 있지만, 정당들은 경청·소통·민의수렴이라는 역할에 소홀했다. 토크콘서트도 과거부터 간간이 시도되던 것이 안철수·박경철·법륜 스님이 20~30대의 귀가 돼준 뒤 열풍이 된 셈이다. 정당이 외면한 소통 공간을 시민사회가 먼저 뚫어준 셈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한나라당·민주당 같은 정당들은 나이가 많은 현 당원들과도 소통이 잘 안된다”며 “진보정당이나 노조는 정파 간 이념논쟁이 심해 젊은이들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못만들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토크’를 콘서트 영역으로 끌어들였던 공연전문가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는 “ ‘불통의 시대’인 MB(이명박 대통령) 정권하에서 소통의 결핍을 메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사회에 불어닥친 토크콘서트 바람을 두고 시민 반응은 아직 미지근하다. 박 전 대표의 23일 대전대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질문을 잇달아 터트렸고 객석은 환호했지만, 박 전 대표는 “찬성은 소신”이라는 말로만 비켜갔다. ‘반값 등록금’ 얘기에 박 전 대표는 “학자금 대출이자를 제로에 가깝게 낮춰야 한다”는 해법을 되풀이했고 학생들은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24일 김황식 국무총리 간담회를 본 대학생들도 “평소 듣던 얘기”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콘텐츠’가 새롭게 와닿지 않은 것이다. 수천명의 청중이 몰렸던 안철수의 청춘콘서트에선 대기업의 독점구조와 기회균등, 사회정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무대에 올려졌고, 정치권을 향한 비판에도 객석과 게스트의 벽은 없었다. 반성과 대안, 진정성이 겉도는 대화는 공명이 적고, 대화의 질과 콘텐츠가 토크콘서트의 성공과 생명력을 좌우하는 셈이다.

“대부분 짝퉁이다.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는 화법이 여전하다”(탁 교수)는 지적처럼, 정치인·유명인들의 토크콘서트를 두고 이벤트에 그쳤다는 지적과 아류 논란도 병행된다. 소통의 창구로,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토크콘서트, SNS에는 날카롭고 옥석을 가리는 객석의 품평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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