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출산주도성장? 전문가들 “새 정책 생각 말라, 끈질긴 보완이 더 중요”

2018.09.17 22:00 입력 2018.09.17 22:03 수정

‘김성태 발언’ 활용법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 재원 330조원을 대신 투입해 아이 1명당 출산장려금과 육아수당 등 20년간 1억원을 지원하자는 ‘출산주도성장’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 재원 330조원을 대신 투입해 아이 1명당 출산장려금과 육아수당 등 20년간 1억원을 지원하자는 ‘출산주도성장’을 제안했다. 연합뉴스

출산주도성장.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이 말은 최근 가장 ‘핫한’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어이없는 주장에 처음엔 말문이 막히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되레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입니다. 우선, 역설적으로 저출산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치열한 논쟁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또 한 가지는 그동안 저출산 해결을 위한 여러 정책을 포퓰리즘이라 반박해 왔던 한국당이 이제부턴 대놓고 반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점에서입니다.

■ 출산율 쇼크 넘는 발언의 쇼크

아동수당 반대한 한국당 ‘변심’
아동 1인당 1억원 지원 담은
김성태 발언 후 각계 반발 불구
역설적으로 저출산 논쟁 계기로

김성태 원내대표의 “출산주도성장” 발언은 지난 5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왔습니다. 사회 전체가 주목하는 자리. 김 원내대표는 작심하고 연설의 앞머리에 ‘출산주도성장’을 내세웠습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출산장려금 2000만원을 지급하고, 이 아이가 성년에 이르기까지 이후 20년간 매년 평균 400만원(월 33만원꼴)의 연간 수당을 지원해 총 1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겁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출생아수가 4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최근 통계 발표, 올해 전체 합계출산율이 0명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연설 소재 자체는 시의적절했지만, 저출산 해법의 내용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 집중포화 부른 ‘KO패 발언’

우선 정치권에서 여야 할 것 없이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국가주의적 발상의 극치, 전근대적이고 해괴망측한 프레임”(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출산을 성장을 위한 도구로 연결시킨 것은 황당한 발상”(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세금 퍼주기식의 단기적 처방이자, 포퓰리즘을 포퓰리즘으로 맞대응하는 수준 낮은 대응책”(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 등 공식 반발 성명이 이어졌습니다.

당사자인 청년, 부모들, 시민단체, 전문가들의 반발도 폭주했습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삼는다, 저출산의 사회구조를 외면하고 돈만 주면 애를 낳는다는 단선적인 사고방식이다, 아동수당도 반대했던 당이 1억원을 준다는 것은 진정성이 의심된다 등이 반발의 주 내용이었습니다. 논란을 거치며, 저출산이 돈만으로, 단박에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이고 다층적인 문제라는 ‘상식’이 다시 한번 확인됐습니다.

여론조사 결과는 ‘설화’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출산주도성장론에 ‘반대한다’고 답한 응답자가 61.1%로, 찬성한다는 응답 29.3%의 두 배를 넘었습니다. 특히 이 같은 반대 경향은 30대(73.8%)에서 높았고, 한국당 지지층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47.9%로 오차범위 내에서 찬성 의견(46.4%)을 앞섰습니다.

■ 반발을 넘어 정확한 현실 진단부터

저출산이 그렇게 단칼에 해결될 문제였다면 벌써 됐어야 합니다. 출산주도성장 논란 속 반발의 목소리 속에 이미 풀어야 할 문제는 나와 있습니다.

청년들은 실업 문제, 높은 집값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꺼립니다. 출산, 육아기엔 마음놓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 여성들의 경우 경력단절 없이 일과 직장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절대 부족합니다. 자녀의 초·중·고 학령기엔 높은 사교육비, 대학을 나와도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구조가 다시 반복됩니다. 아이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즐거움보다 걱정이 앞서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최근 몇 년 새의 문제가 아니라, 2005년 저출산위원회가 생긴 이래 이미 모두가 다 알고 있고, 답도 알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어떤 계획표를 세워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하느냐만 남았습니다.

■ 새로운 정책은 그만, 끈질긴 보완을

선거·관심끌기용 대책 난무
“있는 제도 활용 못하면 안돼
우선순위 정하고 수선하라”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은 “새로운 정책을 생각 말라”는 것입니다. 주기적으로 발표되는 ‘저출산 대책’들을 보면,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다음 선거를 위해, 혹은 관심을 끌기 위해 자잘한 새 프로그램들이 난무합니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정공법을 피해갑니다. 정말 중요한 정책들이 제대로 정착하려면 돈은 많이 들고, 짧은 시간에 표가 안 나는 탓입니다.

지난 12일 육아정책연구소 주최로 열린 ‘초저출산 시대 육아정책의 패러다임 전환과 향후 과제 국제 심포지엄’에서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새 정책을 만들지 말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는 “제도는 웬만큼 갖춰졌지만 실제 이용에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면서 “정치인들은 1년에도 몇 번씩 새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새 정책보다 있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모니터링, 수선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토론에 참여한 이수연 제이앤비컨설팅 대표이사는 중소기업 입장에서 정부 지원 중 어떤 것들이 현실과 맞지 않는지를 지적했고, 오승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도 “구체적인 제도의 정착 방법을 오랫동안 다듬어야 한다. 있는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철퇴를 가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리카 린달 스웨덴 웁살라대 교수는 육아휴직, 남녀 임금격차 문제 등 스웨덴의 가족친화 정책들은 수십년에 걸쳐 보완이 이뤄졌고, 현재도 끊임없이 모니터링을 통해 보완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 공무원 수준 저출산 대책, 모두 누리게

육아휴직·유연근무 등 지표
주기적 분석·정착 노력하고
과감하게 복지예산 늘려야

얼마 전 만난 한 지인은 뜻하지 않은 둘째 임신에 걱정부터 앞섰다고 합니다. 비정규직 상황에서 육아휴직을 가겠다는 말은 직장을 그만둔다는 말이나 다름없고, 대기업 직원인 남편은 가정에선 가사와 육아를 평등하게 담당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은 말도 꺼내지 못하는 회사 분위기라는 겁니다.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6개월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온 회사 후배는 방과 후 딸이 학교 앞에서 학원 버스를 타고 제대로 다닐 수 있을지 걱정돼 학교 끝날 시간이 되면 일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아이당 엄마와 아빠 6년의 육아휴직이 보장되고, 대체인력 걱정 없이 필요에 따라 일을 줄여 자녀의 방과 후엔 함께 집에 갈 수 있는 공무원들이 부럽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차이는 공무원과 일반인의 출산율 차이로도 이어집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신상진 의원은 2013~2016년 공무원 출산휴가 현황을 조사해 공무원 출산이 일반 국민의 2배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공무원이 많은 세종시는 최근 17개 광역시·도 중 합계출산율 최고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 1.67명으로 가장 낮은 서울시(0.84명)의 1.99배에 달했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공무원들이 혜택을 보고 있으니, 국가 현안인 저출산 정책에서만큼은 모든 국민이 공무원만큼의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를 위해 우선 몇 가지 주요 지표들에 주목하길 제안합니다. 어디를 보내든 균등한 질의 믿을 만한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교사 대 원아 비율, 보육교사 처우 개선, 부모들의 평판조회로 확인), 지역거점 시간연장형 국공립 어린이집 확보, 경력단절 여성 비율, 남녀 육아휴직 사용률, 대체근무·유연근무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 현황, 초등돌봄 충족률 등입니다. 연도별 목표와 구체적인 예산추계로 시간표를 만들고,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안되면 왜 안되는지를 사각지대가 없어질 때까지 꼼꼼하게 주기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관련 통계를 한곳에 모아 지역별, 직군별, 회사별로 공개해 적절한 페널티와 인센티브로 선의의 경쟁을 하게 하면 정착 속도가 빨라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출산주도성장 발언 사용법

다시 논의를 촉발시킨 김성태 원내대표의 주장으로 돌아가봅시다. 월 10만원의 아동수당도 포퓰리즘이라고 반대했던 한국당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이당 1억원을 약속하며 강력한 저출산 문제 해결 의지를 표명했으니 기대가 큽니다. 아이는 국가가 키우겠다고 해놓고 교육청에 무상보육 예산을 미루며 부모들을 불안에 떨게 했던 박근혜 정부의 전철은 설마 밟지 않겠죠.

시민들도 눈앞의 내 이익보다 변화가 더디더라도 10년, 20년 후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균형을 고려했으면 합니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새로운 ‘네이밍’과 그럴싸해 보이는 새 정책에 현혹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참에 저출산 예산을 어떻게 확보해 어디에 써야 할지 전 사회적인 대토론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저출산위원회 출범 이후 12년간 저출산 예산으로 130조원을 썼다지만, 누리과정, 양육수당, 초등돌봄까지 커버하고 있으니 1년에 10조원 남짓이 그리 많은 예산은 아닙니다. 더욱이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 청소년 성범죄 예방활동 강화 등 별 관계 없는 자잘한 사업들이 나열되다 보니 저출산 대책의 체감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6년 12월 내놓은 저출산 대책 평가보고서에서, 저출산 예산의 30%가량이 실제 연관성이 적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이 저출산 예산인지 정리부터 필요합니다. 정리된 저출산 대책들은 당사자들이 체감할 때까지 끝까지 보완해 가야 합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경제구조가 고도화되면 재정지출의 방향이 바뀌어야 하는데, 우리는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아직 국민소득 200달러 시절의 예산구조를 그대로 갖고 가고 있다. 개발연대 시절의 사회간접자본(SOC), 농업 보조금, 각종 산업·에너지 예산 등은 시장 원리로 움직이고 국가는 국민들의 안전망을 제공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예산 재조정을 통해 과감하게 복지예산을 늘려야 장기적으로 저출산 문제와 경제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1~2년 후에 공개될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 발표 전에는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남녀에 관계없이 모두가 누릴 수 있는 파격적인 복지 확대와 통 큰 합의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더 이상 임신과 출산이 걱정으로 다가오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2)출산주도성장? 전문가들 “새 정책 생각 말라, 끈질긴 보완이 더 중요”

■ 월 33만원 지원, 기존 혜택에 추가인 줄 알았는데 “중복 있다”

‘의문 셋’ 김 대표에게 물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의 ‘아이 1명당 1억원 지원’ 발언을 얼핏 들으면 현재 받고 있는 혜택들에 더해 추가로 신생아 1명당 1억원을 20년간 현금 지원한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그런데, 연설 직후 김 대표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며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출산장려금 2000만원을 주겠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한달 33만원 지원액의 사용처와 재원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기존 정책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남는 의문 3가지를 김성태 대표에게 물었습니다.

- 언론 인터뷰에서 매달 33만원을 현금이 아닌 바우처(이용권) 방식으로 지원한다고 했는데.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지만) 꼭 바우처로 갈 필요는 없다. 예산 지원 방식은 논의를 거쳐 별도로 정할 예정이다.”

- 월 33만원 지원은 기존의 저출산 혜택에 추가로 더해지는 ‘+알파’ 혜택인가.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아동수당 등 가족정책지출예산을 통합 운영하는 것을 포함해 일부 중복이 있다. 민주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간 ‘출산가구 지원 대책 TF’를 만들자는 공감이 있었다. TF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33만원 지원 방안을 논의하려 한다.”

- 현재의 저출산 예산에는 신생아 지원뿐 아니라 광범위한 수혜자들을 위한 보육, 돌봄, 간접 지원 예산이 다 들어 있다. 김 대표안은 신생아 1명당 1억원 지원을 표방하며 356조원을 신규 재정소요분으로 잡았다. 신생아 대상이 아닌 다른 정책들은 별도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것인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나 워킹맘들을 위한 일·가정 양립 대책 등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고, 희망사다리 장학금이니 청년 인턴제도니 이런 ‘무늬만 저출산 예산’은 저출산 예산이 아니라 별도로 편성해야 한다.”

김 대표는 본인이 발표한 356조원의 예산 외에 별도의 국가재정은 투입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무늬만 저출산 예산’을 제외한 가정양육수당, 보육료 지원 등 다른 기존 예산들은 356조원에 포함돼, ‘1인당 월 33만원 지원’은 상당 부분 축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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