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공공성 망각, 돈만 생각, 감시 사각…사립유치원·대학은 ‘판박이’

2018.10.23 06:00

교육의 공공성 회복

교비 약 7억원을 부당하게 사용해 1년 전 해임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동탄 환희유치원 원장이 지난 17일 경기 화성시 환희유치원 강당에서 학부모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교비 약 7억원을 부당하게 사용해 1년 전 해임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동탄 환희유치원 원장이 지난 17일 경기 화성시 환희유치원 강당에서 학부모들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우리 사회의 핫이슈는 단연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였습니다. 민심 대폭발의 핵심 원인은 사립유치원들이 교육기관이라는 이유로 각종 지원을 받으며 아이들을 상대로 ‘장사’를 해왔고, 이를 각종 권력이 비호, 방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유치원뿐일까요? 한국의 사립대학들도 상당한 국고보조금과 고액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투자하기보다는 재단 이익을 우선하며 ‘교육 장사’를 한다는 점에서 유치원과 닮아 있습니다. 유치원도 대학도 국제사회와는 반대로 국공립보다 사립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를 맞아 교육의 공공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 ‘국공립 보육률 30% 협약’ 12년 제자리

선거 때면 “국공립 보육 확대”
사립 카르텔에 막혀 ‘용두사미’
누리과정 예산 유용 되풀이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비리 사립유치원 명단을 공개한 것은 지난 11일이었습니다. 성난 민심에 놀란 정부는 지난 21일 당·정·청 협의에 이어 조만간 대책을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주요 정책은 대통령 공약인 국공립 취원율 40% 확대가 될 것으로 관측됩니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의 보육 문제에 관심을 갖고 취재해 온 입장에서 심경이 복잡합니다. 일단 속이 후련하고 반갑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허탈합니다.

사립유치원과 민간어린이집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이윤추구가 목적인 사립의 특성상 아무리 혈세를 지원해도 중간에서 샐 수밖에 없으니, 국공립을 일정 수준까지 빠르게 늘려야 한다고 전문가 대부분이 마르고 닳도록 강조했고, 그동안 경향신문에서도 끈질기게 주장했습니다. 원인도, 문제도, 대책도 그대로인데, 그 무렵 유치원 다니던 아이들이 대학교에 갈 때가 되어서야 ‘특단의 대책’을 몇 주 만에 내놓겠다는 겁니다.

저출산·고령화가 본격적인 사회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한 2006년 정부는 사회 각계와 2010년 국공립 시설 보육 아동수를 30%까지 늘리겠다는 협약을 맺었습니다. 2005년 당시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담당하는 아동 수는 각각 11.31%, 22.9%였습니다. 그러나 ‘자율형 어린이집’ 도입까지 거론하며 공공연히 보육의 시장화를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국공립 시설 아동 수 비율은 2012년 어린이집 10.06%, 유치원 20.7%로 되레 추락했습니다.

이후 조금씩 늘기 시작했지만, 지난해에도 국공립 시설이 담당하는 아동 수는 어린이집 12.89%, 유치원 24.8%에 그쳤습니다.

1000억원대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2013년 4월11일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검찰에 다시 구속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000억원대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남대 설립자 이홍하씨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2013년 4월11일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검찰에 다시 구속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학부모가 무서운가, 원장이 무서운가

유치원 사태의 비등점은 학부모들의 분노였습니다. 어렴풋이 문제를 알고 느끼고 있었지만 아이를 맡긴 ‘을’의 입장으로 숨죽이고 있었던 이들의 쌓인 분노가 끓어오른 겁니다.

사립유치원 관련 기사의 댓글 중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 한마디가 학부모들의 심정을 응축합니다. “학부모가 무서운가, 유치원 원장이 무서운가.”

이번 사태를 거치며 사립유치원들의 불투명한 운영과 비리,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를 중심으로 한 이기적인 내부 결속, 여야를 막론한 정치권과 공무원의 비호 의혹 등 민낯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10여년간 각종 선거마다 국공립 시설 확대는 주요 공약이었지만, 선거 후에는 사립 원장들의 강력 카르텔에 번번이 막혔습니다. 연간 4조원 가까운 누리과정 예산이 보육과 상관없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는 것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비리를 양산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목소리가 이번에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각종 비리가 심심치 않게 보도될 때마다 사립·민간 원장들은 똘똘 뭉쳐 아이들을 볼모로 한 집단휴업과 폐원 ‘협박’으로 다수의 상식적인 목소리를 굴복시켜왔지만, “이번엔 참지 않겠다” “판을 바꾸자”는 다수의 부모들이 그동안의 관행을 멈춰 세우고 있습니다.

■ 정부 방조 속 ‘뒤틀린 전통’ 형성

사립대학 ‘입학 장사’도 닮은꼴
등록금 받아 재산만 불려나가
느슨한 처벌에 환수도 불가능

사립유치원 사태를 부러운 시선으로 지켜보는 집단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사립대의 구조적 문제를 고치고자 하는 단체들입니다.

한국에서 교육이 시작되고 마치는 기관인 유치원과 대학의 사립 중심 구조는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류법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은 전체 고등교육과정(고교 이후 교육과정)을 통틀어 19.7%만 국공립학교 학생이고, 80.3%가 사립학교 학생입니다. 4년제 일반대의 경우 국공립 학생 비율이 23.6%입니다. 국공립이 대부분이고, 일부 정부 의존형 사립대에 다니는 OECD 국가들과는 공사립의 비중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대학과 권력>이란 책에서 ‘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를 정리한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는 “한국 대학의 탄생기에는 신생국가처럼 국가권력이 나서서 대학교육을 주도한 것이 아니라, 사학을 중심으로 대학권력이 먼저 형성되었다”고 한국적 특수성을 설명합니다. 교육적인 목적이 아니라 해방 후 농지개혁 회피수단으로 재산을 지키기 위해 대지주들의 대학 설립 붐이 이어졌다는 겁니다. 이후에도 정부정책은 공공성과는 멀어지는 방향을 택하며 공사립 불균형을 오히려 악화시켰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 대학 설립 조건이 대폭 완화된 후 사립대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국립대 통폐합을 거치며 국립대 학생 비율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

시장에 맡겨진 대학교육은 “소위 ‘입학 장사’에 치중하면서 등록금으로 수지타산을 맞추는 뒤틀린 전통”을 형성했고, 사실상 정부의 방조 속에 불법과 편법, 비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로 잘못된 관행을 굳혀 왔습니다. 2016년 현재 사립대의 운영구조는 거의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43.6%)와 국고보조금(23.0%)으로 운영됩니다. 재단이 내는 법인전입금은 2.8%에 불과합니다.

교육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학생을 잘 가르치기 위한 것이지만 주객이 전도된 경우도 상당합니다. 비싼 등록금을 받아 적립금 쌓고 건물 지으며 재산을 불려갑니다. 사학 설립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제왕처럼 군림하며, 족벌경영과 회계부정, 인사비리 등을 통해 학교를 사유화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송현숙의 만만한 시사](4)공공성 망각, 돈만 생각, 감시 사각…사립유치원·대학은 ‘판박이’

■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은 공공재다

존재 이유 망각한 ‘주객전도’
“교육 장사 막게 감시체계 강화”

‘모든 국민이 이 정도는 학습해야 한다’는 취지의 일반보통교육은 우선 초·중·고교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다음이 고등교육(고교 이후)과 취학 전 단계입니다. 세계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교육은 취학 전부터 초·중등 교육, 고등교육에 이르기까지 당연히 공공재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교육이 수익을 뽑아야 할 비즈니스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 곳곳에 남아 있는 봉건적 잔재들을 없애고 공적인 감시체제를 강화해 교육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교육기관으로서의 사학의 무책임을 보여주는 사례를 전합니다.

1000억원이 넘는 횡령으로 학교 폐쇄와 법인 해산 절차에 들어간 서남대 전 이사장 이홍하의 잔여재산 600억~800억원이 딸과 부인 등에게 다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비리로 폐교하는 사학의 잔여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일명 ‘비리 사학 먹튀 방지법’이 지난해 말 국회 교문위를 통과했지만, 이후 법사위에 계속 계류 중입니다. 당시 법사위 야당 간사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학 비리는 문제지만 남은 재산까지 국고에 귀속시키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고 헌법상 사유재산권 보장 등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고 반대했습니다. 당시 법사위원장은 역시 한국당 권성동 의원이었습니다.

9개의 학교를 설립해 학교 자금을 돌려막기식으로 횡령하며 수백억원의 자산이 형성된 ‘사학대도’의 재산조차 느슨한 처벌로 환수가 안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학생과 교직원들은 피해를 보는데 정작 비리 당사자들은 남은 재산을 챙기고 있습니다.

비리를 저지르면 누구든 강력하게 벌하고, 재산상 손실에는 수십배의 가혹한 환수조치가 이어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위해 최선의 투자를 하고 좋은 교육으로 평가받겠다는 원래 취지의 사학만 살아남고, 교육 공공성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돈 되는 교육사업’을 방관하면 안됩니다. 피해는 다시 아이들의 몫으로 돌아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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