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박원순·김종철까지···‘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다

2021.02.13 09:34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경향신문 자료사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경향신문 자료사진

“설마, 그 분이 그랬을 리 없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박원순 전 서울시장,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로 이어진 진보진영 내 성폭력 사건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들이 평소 누구보다 ‘여성 인권’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사건이 나올 때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그랬을 리 없다’는 반응이 뒤따랐다. 이는 곧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럴 리 없는 사람’은 없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가해자다움은 없다”라고 지적한 것처럼 누구나 성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가까운 이들이 주로 가해자가 되는 성폭력의 특징을 이해하는 계기가 돼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성폭력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안 전 지사와 박 전 시장, 김 전 대표는 여성 인권을 대변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잇따라 내왔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역사에서 이제 거의 마지막 남아 있는 차별의 숙제는 성별 차별”이라고 말했다. 2018년 피해자의 폭로가 있기 직전에는 “성차별과 폭력의 문화를 극복해낸다면 우리는 사람으로서 좀 더 평화로운, 공정한 기회의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 전 시장은 2019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눈물을 흘렸고 절망감을 느꼈다”며 “저는 페미니스트가 맞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은 여성이 육아·돌봄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서술한 책이다. 안 전 지사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직후에는 “남자로서, 시민으로서, 또 무한 책임을 진 시장으로서 굉장히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라고도 말했다. 1980년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변호한 이력은 이러한 발언에 힘을 실었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대표로 취임한 전후로 당의 방향성을 두고 “여성주의적 혁신” “성평등주의 가치”를 강조했다. 지난달 기자회견에서는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며 “사회의 압도적인 성적 구성은 여성에게 철저히 불리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피해자가 당에 성폭력 발생을 신고해 김 전 대표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던 시점이었다.

이들의 언행은 성폭력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그랬을 리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믿음과 신뢰를 앞세워 성폭력을 감싸는 발언이 가해자 주변과 지지자들에게서 나왔고, 이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논란으로 이어졌다.

최근 박 전 시장 부인인 강난희 여사가 “아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나의 남편 박원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편지글을 공개하자,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인 우상호 의원이 이를 언급하며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피해자는 “유족에 대한 의원님의 공감이 피해자인 저와 제 가족에게는 가슴을 짓누르는 폭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장혜영 정의당 의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 전 대표의 성추행 피해자인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그 사람이 그럴 리 없다’는 한국 사회의 가해자 옹호 논리를 “가해자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직격했다. 지난달 25일 김 전 대표 성추행 관련 입장문에서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며 “누구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이전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오거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학자인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기획위원은 ‘그럴 리 없다’라는 말에 성폭력에 대한 ‘착각’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겉으로 여성 인권을 외치고 더욱이 피해자와 가까운 관계에서 교류하던 이들이 어떻게 성폭력 가해자가 되겠느냐는 인식에 대해 “성폭력의 특징을 그만큼 모르고 있다는 얘기”라고 지적한다.

권김 위원은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은 낯선 사람이 성적 좌절감이나 사회에 대한 분노를 잘못 푸는 것으로 이미지화 돼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의 성폭력은 가까이에서 알고 지내던 직장 동료나 가족 등이 신뢰를 배신하며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데에서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안 전 지사 성폭력 피해자 김지은씨는 수행비서였고, 박 전 시장 성폭력 피해자도 지근거리에서 일하던 비서실 직원이었다. 장 의원에게 김 전 대표는 “함께 젠더폭력근절을 외쳐왔던 정치적 동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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